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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원전 대세 불구 역행하는 한국 에너지 정책

원전 돌려 번 돈 '1조3000억'

태양광에 다 퍼준 기막힌 사연

이종배 의원

'한수원 신재생에너지 발전의무 제외법(신재생에너지법 개정안)' 발의



국내 최대 발전 공기업이자 원자력 발전소 운영사인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이 원전 대신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 공급 의무를 채우느라 천문학적 비용을 지출했던 '정책적 모순'이 해소될 여지가 생겼다. 한수원을 신재생에너지 공급 의무자에서 제외하는 내용의 법안이 국회에 발의되면서다. 한수원이 탄소를 전혀 배출하지 않는 원전을 운영하면서도, 별도로 신재생에너지 공급 인증서(REC)를 사들이는 불합리함을 개선해야한다는 지적이다.


"원전 굴리려면 태양광 딱지 사오라"

이종배 국민의힘 의원(충북 충주)은 이 같은 내용을 담은 '한수원 신재생에너지 발전의무 제외법(신재생에너지법 개정안)'을 발의했다고 8일 발표했다.

현행 신재생에너지법은 전기사업법에 따라 500MW(메가와트) 이상의 발전 설비를 보유한 사업자에게 총발전량의 일정 비율 이상을 반드시 태양광과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를 이용해 공급하도록 강제한다. 만일 약속한 발전량을 채우지 못하면 외부에서 REC를 구매해야 한다.

이러한 현 '신재생에너지 공급의무화제도(RPS)'에서 한수원을 예외로 하자는 게 이 의원 개정안의 골자다. 한수원이 운영하는 원전은 화력발전소와 달리 탄소를 배출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일괄적으로 의무 공급 대상에 포함되면서 한수원은 태양광발전소를 운영해왔고, 할당량을 채우지 못해 REC를 구매해 왔다. 이 의원실이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한수원은 지난 2년간(2023~2024년) REC 구매 비용으로 1조 3200억 원을 쓴 것으로 나타났다. 이 기간 한수원의 순이익 6948억원의 두 배에 달한다.

이대로 흐른다면 한수원의 재무구조는 나빠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원전 가동으로 벌어들인 수익이 다른 태양광·풍력 사업자의 수익 보전을 위해 흘러 들어가면, 시장 원리에 따른 '전원 간 경쟁'을 저해할 수도 있다. 중장기적으로는 한수원의 투자 여력이 훼손되고, 소비자의 전기요금 부담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는 분석도 나온다.

에너지 전문가들 사이에선 기술적 측면에서도 한수원에 신재생에너지 공급 의무를 부여하는 건 자가당착에 가깝다는 비판이 크다. 태양광 발전 비중이 늘수록 전력당국은 전력망 과부하를 막기 위해 기저전원인 원전의 출력을 줄이는 '감발'을 동원할 수 밖에 없어서다.

이 의원은 "한수원이 원전 출력을 위협하는 태양광 발전에 힘쓰고, 심지어 상당한 REC 비용까지 지불하고 있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원자력 또한 친환경 에너지원임을 인정하고, 국내 기술과 기후에 맞는 에너지 정책으로 기조를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뉴스1


해외는 "원전도 청정"… '무탄소 보조금' 지급도

해외에선 최근 5년여 간 기존 'RE100(재생에너지 100%)' 개념을 원전을 포함하는 'CFE(무탄소 에너지) 100%' 이니셔티브로 바꾸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미국에선 뉴욕 등 주요 주를 중심으로 기존 RE100위주의 RPS를 원전을 포함하는 '청정에너지 의무화제도(CES·Clean Energy Standard)'로 대체하는 추세다. CES에선 태양광·풍력뿐만 아니라 원자력, 수소 등 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모든 에너지원을 탄소감축 의무 이행 수단으로 인정한다. 뉴욕주는 원전 사업자가 탄소를 배출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원전 운영사에 ZEC(Zero Emission Credit, 무탄소 배출 크레딧)이라는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과 프랑스 등 유럽 국가들도 원자력을 '저탄소 전원'으로 분류해 재생에너지와 동등한 지위를 부여하거나 별도의 지원책을 마련 운영 중이다. 한국처럼 원전 사업자에게 재생에너지 구매 의무를 지워 패널티를 주는 국가는 드물다는 비판이 나오는 배경이다.

하지만 현재로선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국회 다수당인 더불어민주당에 '감(減)원전' 내지 '탈(脫)원전'을 주장하는 의원들이 많아서다. 정부의 에너지 정책 기조와도 거리가 있다는 분석이다. 김성환 기후에너지부 장관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원전을 유연성 전원으로 활용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현재 24시간 가동을 목표로 운영되는 '기저 전원'인 원전을 신재생에너지 확대에 맞춰 앞으로 '출력을 조절하는 방식'으로 운영하겠다는 이야기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에너지 전문가는 "원전 운영 수익이 재생에너지 보조금으로 유출되는 구조는 한수원의 재무 건전성을 악화시키고, 소형모듈원전(SMR) 등 차세대 기술 투자 여력을 갉아먹는다"며 "글로벌 트렌드에 맞춰 신재생 중심의 RPS 제도를 보다 기술중립적인 CFE 제도로 개편해야한다"고 지적했다.

김대훈 기자

https://www.hankyung.com/article/202512080018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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