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시드니 센트럴역 플랫폼에 ‘마리융(Mariyung)’이란 이름의 2층 전동차가 들어섰다. 열차를 기다리던 휠체어 이용객, 유모차를 끈 보호자, 전기자전거를 들고 탄 승객이 차례로 탑승했다. 이 전동차는 현대로템이 제작한 신형 도시 간 열차(NIF·New Intercity Fleet)다.
시드니 NIF는 현대로템이 2016년 호주 뉴사우스웨일스(NSW)주 교통부에서 수주한 프로젝트다. 610량이 공급돼 순차적으로 운행에 들어갔으며, 지난달 3일 최종 인수 승인(FA)을 받아 본격적으로 상용 운영 단계에 돌입했다.
지난 11월 27일(현지시간) 센트럴역에서 터거라역까지 약 98㎞, 1시간30여 분간 타 본 NIF에서 단연 돋보인 것은 ‘교통약자 배려’였다. 휠체어석은 물론 최대한 넓게 제작된 출입문이나 화장실, 넘어졌을 때도 누를 수 있도록 낮게 설치된 긴급 호출 버튼 등이 눈에 띄었다. 청각장애인이 착용한 보청기를 통해 역내 방송을 들을 수 있는 시스템도 있었다.
호주 척수 손상 장애인 단체(SCIA) 활동가로서 NIF 제작 과정에 참여한 그레그 킬린 씨(63)는 “휠체어가 편하게 움직일 수 있고 화장실 사용도 매우 편리했다”며 “긴급 호출 버튼도 많은 도움이 됐다”면서 ‘10점 만점에 10점’으로 평가했다. 전기자전거를 휴대한 채 탑승한 비슈알 두나 씨(24)는 “기차를 오르내릴 때 공간이 넓고 장애물이 적어서 자전거를 싣고 내리는 데 편리하다”며 “내부 공간도 넓어 장시간 이동하는 데 있어서도 편리하다”고 말했다.
이 전동차에는 ‘종이 열차’란 별명이 붙었다. 현대로템은 호주 철도 유지보수 업체인 UGL, 전장부품 담당인 미쓰비시전기 호주(MEA)와 레일커넥트 컨소시엄을 구성해 13개월에 걸쳐 이해관계자 협의를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기관사 노조, 장애인협회, 안내견협회, 자전거협회 등 단체에서 215회에 걸쳐 의견을 받았는데, 이때 나온 종이 문서가 수천 개에 달했다. 요구 사항 2871건은 설계, 색상, 좌석 배치, 안전장치에 오롯이 반영됐다.
현대로템이 호주 시장에서 중국을 앞지를 수 있던 배경으로는 ‘신뢰’가 꼽힌다. 글로벌 1위 업체는 점유율 23.4%의 중국중차고, 유럽·일본 업체들이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한국 현대로템은 13위다. 김정훈 현대로템 철도사업본부장(전무)은 “중국 업체들은 최초 입찰에서 가격을 낮게 제시한 뒤 실제 사업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납품이 지연되고 품질 문제에 대한 해결이 늦어지는 사례가 많았다”며 “현대로템은 적기 공급 체계를 유지하며 신뢰를 쌓았다”고 말했다.
현대로템은 호주 수주 경험을 토대로 글로벌 철도 발주 사업을 확장한다는 계획이다. 올해 1월 모로코에서 2조2000억원 규모의 전동차 사업을 수주했고, 지난해엔 미국 로스앤젤레스(LA)와 보스턴, 우즈베키스탄 등에서 계약을 따냈다.
뉴사우스웨일스주정부는 구체적 사양을 지정하는 기존 방식 대신 달성해야 할 ‘성능 기준’만 제시했는데, 현대로템은 기술 사양뿐만 아니라 접근성, 운행 안전, 규제 대응, 현지 적용성까지 종합적으로 충족했다.
[시드니 = 박승주 기자] 매일경제
https://www.chosun.com/economy/2025/12/02/ZSKJ7T6SMBHUJKM32HIQEWCI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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