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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의 늪] 연구자 떠나는 나라, 과학기술 패권도 없다


김화랑 회사원·이학박사

대학원 시절, 낮은 보수 탓에 늘 생계가 우선이었다. 넉넉지 않은 형편의 동료들도 처지는 비슷했다. “교수 되면 안정과 명예가 있겠지”라는 기대는 사라지고 회사로 향했다. 최근 동기 모임에서 해외 박사후 과정을 마치고 명문 사립대 조교수로 임용된 친구는 초봉이 7000만원이라 전했다. 모두 아연실색했다. 더 충격적인 사실은 서울대 조교수 초봉이 10년째 제자리로 6000만원대라는 점이었다.




우수 인재는 값을 후려치는 곳에 남지 않는다. KBS ‘인재 전쟁’이 보여주듯, 최상위권은 의대로 몰린다. 현직 연구자도 ‘자녀의 공대 진학을 말릴지 고민’이라 털어놓는다. 연구 헌신이 안정된 삶으로 이어지지 않는 현실을 누구보다 잘 알아서다. “성적 좋은데 왜 의대 안 갔냐”는 물음은 공학도의 일상이다.

중국은 다르다. AI 스타트업 ‘딥시크’ 창업자 량원펑처럼 유학 경험 없는 토종 공학도가 활약한다. 칭화대·베이징대는 수재에게 최고 연구 환경을 제공한다. 과학자를 영웅 대우하니 기술 창업도 폭발적이다. 미국도 비슷하다. 스탠퍼드·MIT 졸업생 상당수가 박사 과정과 창업을 택한다. ‘포브스 30세 미만 30인’엔 늘 과학자와 창업자가 있다. 글로벌 시장은 우수 인재에게 천문학적 보상을 지급한다. 구글 AI 연구원 연봉은 수십억~수백억 원에 달한다. 일본은 해외 AI 인재 유치에 대학 펀드까지 동원해 1조원을 쏟는다 하고, 미국·유럽 각국도 수천억 원 규모 AI 연구 패키지를 운용한다. 반면 한국의 신규 AI 프로젝트는 3년간 20억원, 그마저도 대부분 연구비다.

학자도 미래를 그릴 여유가 있어야 도전적 연구가 가능하다. 저임금은 과제 의존을 높이고, 외부 활동으로 내몬다. 지난 4년간 50명이 넘는 서울대 이공계 교수가 더 나은 조건을 찾아 떠났다. 중국 헤드헌터들은 국내 박사급 인재를 상시 스카우트한다. 이런 현실에서 교수 연봉 인상을 ‘기득권의 탐욕’으로 치부하면 학계는 고인물이 된다. IMF 외환 위기 때의 이공계 붕괴를 되풀이할 순 없다.


량원펑 딥시크 창업자.


정부는 내년 R&D 35조원 투자와 과학계 숙원인 PBS(과제기반 제도) 단계적 폐지를 발표했다. 대단히 환영한다. 그러나 과학 강국으로 도약하려면 신진 교수의 보수 현실화가 필요하다. 연구비는 프로젝트 단위로 소진되면 끝이지만, 안정적 수입은 지속적으로 연구에 몰입하게 한다. 서울대 등 국립대 이공계 교수 연봉 인상은 과학기술계 전반을 흔들 것이다. 이는 사립대와 정출연 보수를 끌어올리고, 신진 연구자의 이탈을 막으며, 대학원생에게도 ‘학문 해도 먹고살 수 있다’는 신호다. 산업계도 인력 확보 경쟁에 나선다. 즉 과학기술 생태계의 질적 향상이 된다.

문제는 인건비 체계다. 서울대 교수는 법인 소속이지만, 인건비는 공무원식 호봉제를 따르고 예산은 여전히 기재부에 의존한다. 이 구조로는 대학 자율적 보상도 어렵다. 당장 전면 개혁이 어렵다면, 반도체·AI·바이오 등 국가 전략 분야 신임 교수에게 선발형 보조금을 지급하는 공개 보상 체계 도입을 제안한다. 영국·캐나다·싱가포르도 유사 제도를 운영한다. 또 대학 자율의 성과 기반 매칭 펀드를 조성해, 성과가 보상으로 환류되는 구조를 마련해야 한다. 소외되기 쉬운 기초과학 분야엔 안정적 지원, 성과 보상 강화 등 별도 생태계 구축이 필요하다. 사명감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단언컨대, 보상 없는 ‘실패할 용기’란 존재하지 않는다.

https://www.chosun.com/opinion/contribution/2025/11/25/A4NV72WLSFGGNOHG6LQJRH5VE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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