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서 4900만명이 사용하는 국민 메신저 카카오톡 개편 후폭풍이 거세다. 카카오는 지난 23일 오후부터 이용자에 따라 차례대로 업데이트를 하고 있는데 카톡을 업데이트하는 이용자가 늘어날수록 여론이 악화하는 모습이다. 일부 긍정적인 반응을 내놓는 이용자도 있지만 다수 이용자는 ‘친구’ 탭이 ‘인스타그램’처럼 바뀌면서 직장 동료, 거래처 관계자, 어린이집 선생님, 정수기·비데 점검 기사, 반찬 가게 업주 등 사무적으로 알고 지내는 사람들의 게시물이 카톡 첫 화면을 채우는 것에 강한 반감을 보이고 있다. 학부모들은 새로 추가된 숏폼 기능에 우려를 나타낸다. 그동안 아이들이 중독성이 강한 숏폼을 이용하지 못하도록 통제해 왔는데, 오래전부터 아이들이 사용해온 카톡에 기본 기능으로 적용되면서 자녀에게 노출되는 것을 막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온라인에서도 “카카오 직원들은 직장 상사 얼굴을 그렇게 크게 보고 싶으냐” “개선이 아닌 개악이다” 같은 황당·불만·풍자 섞인 후기들이 이어지고 있다. IT 업계 관계자는 “국내 IT 역사상 서비스 개편 역풍이 이렇게 세게 부는 것은 전례를 찾기 어렵다”며 “15년 만에 대대적으로 카톡을 개편한 카카오가 궁지에 몰렸다”고 말했다.
30대 직장인 A씨는 25일 아침에 일어나 카톡을 켜자마자 깜짝 놀랐다. 카톡이 업데이트되면서 첫 화면에 기존의 친구 목록이 사라지고 전혀 모르는 사람 얼굴이 나왔기 때문이다. A씨는 “전화번호부를 찾아보니 예전에 업무로 만난 분 이름으로 저장이 돼 있었다”면서 “아마 그분이 전화번호를 바꿨고 현재 이 번호를 쓰는 다른 사람의 얼굴 사진이 나온 것 같다”고 말했다. A씨의 카톡 첫 화면에서 이 사진이 사라진 건 3시간 뒤였다. 또 다른 직장인 강모씨는 “아침에 카톡 앱을 열었더니 지인이 미역국을 먹었는지 미역국 사진이 대문짝만 하게 나와 황당했다”고 말했다.
카톡 개편으로 벌어지는 웃지 못할 촌극은 이뿐 아니다. 카카오는 친구 탭을 인스타그램처럼 바꾸면 이용자들이 게시물을 잇달아 올리면서 카톡 체류 시간이 늘어날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이용자들은 전혀 다른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한 이용자는 “기억에서 가물가물한 사람들의 얼굴이 떡하니 나오는 것을 보고 내가 프로필 사진을 바꾸면 누군가 같은 피해를 보겠다는 생각에 함부로 프로필을 못 바꾸겠다”고 말했다.
카톡 프로필 사진의 장점 중 하나였던 ‘휴가 중’ 이미지를 올리기도 쉽지 않아졌다. 한 직장인은 “누군가의 카톡 첫 화면에 내가 올린 휴가 중이라는 이미지가 계속 나온다고 생각하니 아찔하다”고 말했다. 게시물을 보기 싫은 경우에는 해당 친구를 ‘숨김’ 처리하면 된다. 이용자들은 “소통을 강화하기 위해 개편했다고 하는데 오히려 소통을 차단하는 것 같다”고 말한다.
이제라도 기존 전화번호부형을 선택할 수 있도록 서비스를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도 쏟아지고 있다. 한 이용자는 “카톡 친구가 진짜 친구인 줄 아느냐”며 “친구들과 인스타그램을 하고 싶은 사람은 인스타그램을 하지 카톡을 안 한다”고 말했고, 또 다른 이용자는 “채팅 앱은 채팅에만 충실하면 되는데 강제로 소셜미디어 기능을 쓰게 만드는 건 거대 플랫폼의 황당한 갑질”이라고 말했다.
카카오가 개편한 세 번째 탭에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이번 개편으로 ‘오픈 채팅’ 탭이 ‘지금’ 탭으로 이름이 바뀌었고, 탭을 누르면 곧바로 숏폼 콘텐츠를 볼 수 있다. 틱톡·유튜브 등 숏폼 콘텐츠를 무기로 이용자를 끌어들이는 경쟁 플랫폼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이다.
그러나 학부모들의 우려는 크다. 초등학생을 자녀로 둔 한 학부모는 “아이가 하교 후 카톡이 이상해졌다며 들고 왔는데 숏폼이 있어서 깜짝 놀랐다”며 “그동안 아이 정신 건강을 위해 숏폼을 제한해왔는데 아이 휴대폰에서 카톡을 지워야 할 것 같다”고 했다. 다른 학부모는 “교육 현장에서는 카톡에 학급 단체 소통을 위한 오픈 채팅방을 개설해 운영하는 경우도 많다. 숏폼을 없앨 방법을 찾아봤는데 없더라”라고 말했다. 학부모 커뮤니티에도 카톡의 숏폼 도입에 대한 불만을 제기하는 글이 잇따라 올라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숏폼 콘텐츠가 정서 불안, 우울감, 주의력 저하 등 청소년의 정신 건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해왔다. 이달 중순 프랑스 국회 조사위원회도 6개월간 숏폼 플랫폼 틱톡의 위해성을 조사한 결과 위원 28명이 만장일치로 “청소년을 위협하는 최악의 소셜미디어 중 하나”라고 결론 내렸다.
카카오 관계자는 “앱에서 바로 숏폼을 끌 수 있는 기능은 없지만 법정대리인은 카카오 고객센터 페이지에서 본인과 자녀폰을 인증하고 이메일, 문의 내용 등을 작성해 가족관계증명서를 제출하면 자녀의 숏폼 시청을 제한할 수 있다. 보호 조치는 시작일로부터 1년간 적용되므로 1년마다 갱신해야 한다”면서 “기존 오픈채팅방 운영 원칙과 동일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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