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관]
북한까지 다녀온 임수경이 열 받아서
정치와 활동 단절
이 인간들은 아직도 버티며
한자리씩 꿰어 차고 있어
아마 자신들도 오래 살고 볼일이야 했을 것
2000년 5월 17일 5.18 민주화운동 기념일 전야제 행사에 참가하기 위해 광주광역시를 방문한 386세대 정치인들이 전야제가 끝난 바로 직후 시내의 '새천년NHK'[1]라는 유흥주점에서# 다수의 여성 종업원을 대동하고 술을 마셔 논란이 된 사건. 새정치의 희망을 자처하던 86세대 정치인들뿐만 아니라 박노해 시인, 이종걸 의원, 김태홍 의원 등 인사들의 추태로 큰 파문이 일었으며 특히 우상호는 임수경에게 폭언하여 도덕성 논란이 일었다.

이 사건은 잠시 술자리에 참석한 임수경이 386 커뮤니티인 '제3의 힘'에 올린 게시글을 통해 세간에 알려졌다.
당시 기사들은 대부분 '5·18 전야제 술파티 파문'과 같은 타이틀로 사건을 보도했고 이후 한동안 인터넷 블로그 등지에서도 '5·18 전야제 술파티 사건' 등으로 회자되었다. 그리고 한동안 이 사건은 오랫동안 잊혀져 있다가 해당 사건 연루자들이 대거 거물급 정치인으로 성장한 2010년대 후반 다시 재조명되기 시작했다. 이 사건은 이후 사건이 일어난 술집의 이름에서 따 온 새천년 NHK 사건이라고 불리고 있다.[2]

2. 내용
2.1. 전개
5.18 민주화운동 20돌을 하루 앞두고 새천년민주당 소속 86세대 정치인들이 광주를 찾았는데 재선의원이 된 김민석 의원과 1달 전의 16대 총선에서 갓 당선된 송영길, 장성민, 정범구, 김성호, 임종석 당선자, 그리고 여기에 낙선한 우상호 서대문갑 지구당 위원장 등 86세대 정치인들이 주류였다. 오후 1시께 망월동 구묘역의 제단에 참배할 때는 박노해 시인이 추가되었다.
전야제 사회자로 캐스팅된 임수경도 참석했는데 임수경은 전야제가 끝난 후 정범구와 약속을 잡았다. 이후 임종석은 다른 일정을 이유로 무리에서 떠나 고향인 장흥군으로 내려갔으며 남은 이들은 김태홍이 마련한 광주광역시 지역 재야인사들과 86세대 정치인과의 간담회를 치른 후 전야제에 참석했다. 전야제가 끝난 후 계획은 숙소인 금수장 호텔[3]에서 '정치개혁-초선의원이 해야 할 일'이란 주제로 세미나를 열 예정이었으나 정작 이들은 숙소가 아닌 '새천년 NHK' 단란주점으로 향하고 말았다. #
사건이 일어난 장소인 '새천년 NHK' 단란주점은 당시 광주 북구 을 당선인이었던 김태홍과 관련이 있었던 단란주점이다.[4][5] 당시 이 자리에 참석하였던 이상수는 다음해 새천년민주당 원내총무 경선에서 승리한 바 있는데 정치판의 초선의원 섭외작전이 투표권 때문에 자주 일어난다는 것을 감안하면 이상수계였던 김태홍이 준비된 일정을 바꿔 단란주점으로 유도해 지지를 호소했을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당시 연합뉴스 기사 역시 이상수가 원내총무에 출마했음을 알렸으며 예정 변경 후의 단란주점행 역시 김태홍이 주선했음을 밝혔다. #
가장 민감한 부분인 접대부의 술시중 여부에 대해 일부 정치인은 부인하며 넘어가려고 했다. 그러나 일부는 결국 접대부가 동석해 술시중을 든 것을 시인했다. 송영길 당선자는 한 인터뷰에서 “아가씨도 들어오고 노래도 한 곡씩을 부르고 박수도 쳤다”며 접대부가 동석한 것을 실토했다. 당시 술자리에 함께 있었던 이상수 의원의 한 측근은 “술집에서 아가씨들이 나와 자리에 앉는 것이야 다 아는 건데 굳이 따질 필요가 있느냐”며 접대부가 합석한 것을 부인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건으로부터 일주일 후인 5월 25일 이들이 ‘광주를 방문했던 젊은 위원장들’이란 이름으로 발표한 공동 해명서에는 “술집 주인과 남녀 종업원이 번갈아 드나들었다”고만 밝혔을 뿐 합석 여부에 대해서는 언급을 피했다.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단란주점 주인 최아무개씨는 "접대부요? 마담에게 물어보세요. 우리 애들 한두명이 들어가서 노래방 기계에 번호 눌러준 것이 전부인데…. 언론에서 너무 뻥튀기 했어요."라며 접대부설을 부인했다. 그러면서 "김태홍 당선자는 제가 평소 알고 지내던 분이었습니다. 그분이 다른 정치인들하고 오셨기에 대접한 거죠. 인원은 많았지만 술은 거의 드시지 않았습니다. 열대여섯명이 국산양주 세병하고 맥주 여남은 병 밖에 안 드셨으니까요. 술값도 한 70~80만 원 나왔을텐데 제가 안 받았습니다."라며 김태홍과의 친분관계를 인정했다. 술집 주인과 종업원은 이들이 술집에 온 시간은 10시 30분부터 11시 사이이며 얼굴이 벌개지도록 마신 사람은 없었고 두 시간 정도 후에 숙소로 돌아갔다고 말했지만 이들을 인터뷰한 한겨레는 "그러나 최씨 등의 말에는 사건을 ‘축소’하려는 기색이 역력히 엿보였다. 그러면 실제 진실은 무엇일까?"라고 의문을 제기하면서 접대부 여럿이 술시중을 들고 있었고 부르스를 추는 정치인도 있었다는 임수경의 발언을 보도했다.#

3. 당사자 및 관련 인물
임수경: 당시에는 정치인이 아니었으며 5.18 민주화운동 전야제 사회자를 맡아 광주에 왔다. 이 사건을 알린 폭로자로 후일 19대 국회의원 역임.
우상호: 당시에는 16대 총선에서 낙선한 원외 새천년민주당 서대문구 갑 지구당 위원장으로 임수경의 목덜미를 잡고 욕설을 했다고 알려졌다. 이후 17, 19~21대 총선에 당선되어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를 지냈고 서울시장 재보궐 선거 경선에 참가했지만 박영선에 밀려 낙선했다. 하지만 2022년에 더불어민주당의 대선, 지선 참패 이후 지도부가 모두 사퇴하자 구주류인 범친문계와 신주류인 친명계 어느 한쪽에 치우친 인물이 아니기 때문에 다음 전당대회까지 비대위원장[6]을 맡았다. 현재 이재명 정부의 정무수석비서관.
김민석: 당시 재선 국회의원. 15~16, 21~22대 현역 국회의원이자 더불어민주당 수석최고위원. 제 49대 국무총리 내정자이자 이재명 정부 초대 국무총리 내정자.
송영길: 당시 초선 국회의원 당선인. 이후 16~18, 20~21대 국회의원과 인천광역시장, 더불어민주당 대표 역임.
이종걸: 당시 초선 국회의원 당선인. 16~20대 국회의원,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역임.
정범구: 당시 초선 국회의원 당선인. 16, 18대 국회의원, 문재인 정부 주독일대사 역임.
김태홍: 당시 초선 국회의원 당선인. 16~17대 국회의원, 새천년 NHK 주선자.
이상수: 당시 3선 국회의원. 13, 15~16대 국회의원, 참여정부 노동부 장관 역임.
김성호: 당시 초선 국회의원 당선인. 16대 국회의원.
장성민: 당시 초선 국회의원 당선인. 16대 국회의원. 김대중 정부 대통령비서실 정무비서관, 국정상황실장 역임. 이후 열린우리당에 가지 않고 구민주계의 일원으로 활동하다가, 보수 정당으로 갈아타 선거에 출마하였으며, 윤석열 정부 대통령비서실 미래전략기획관을 맡기도 했다.
박노해: 시인이자 노동운동가.
문용린: 당시 교육부 장관. 이후 서울특별시 교육감 역임.
한상진: 당시 한국정신문화연구원장.
노성만: 당시 전남대학교 총장.
오수성: 당시 전남대학교 5.18연구소장.
천득염: 당시 전남대학교 학생처장.
박종율: 당시 전남대학교 교무처장.
임종석: 당시 초선 국회의원 당선인. 16~17대 국회의원, 문재인 정부 대통령비서실장 역임. 다만 임종석은 5.18 묘역에서 참배를 마치고 고향인 장흥군을 방문했기 때문에 이 자리에 없었다.
이 명단은 참석자 중 일부로 알려지지 않은 또 다른 인물도 있음.
발단
처음 임수경이 5월 24일 오전 9시 55분 '제3의힘'에 올린 글은 약 10시간 동안 47명이 조회한 후 삭제되었다.#
그러나 같은 날 오후 9시 17분 익명의 독자가 동아닷컴 독자게시판에 386-그 두 얼굴의 위선을 알린다[7]는 글을 올리면서 파문이 확산되기 시작하였다.
이에 대해 임수경은 26일 "내가 쓴 글은 사이트에서 금방 삭제됐는데 악의적으로 본질을 왜곡한 글들이 인터넷상에 돌아다니고 있다", "상황묘사를 하지 않았음에도 인터넷상에서는 당시 상황을 구체적으로 묘사하는 등 장문의 글이 떠돌며 젊은 세대에 대한 비난여론만 부각시키고 있다"고 주장했다. #
그러나 6월 2일 한 네티즌이 다시 제3의힘 게시판에 원본 글을 올림으로써 거짓 해명이었음이 밝혀졌다. 이 네티즌은 "그날 한밤중에 우연히 제3의힘에 들어왔다가 이 글을 프린트해서 읽게 되었습니다"라면서 "임수경 씨 보호를 위해 공개를 회피하는 제3의힘 입장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원문이 공개되지 않음으로 인해 쓸데없는 추측만 늘어나는 것 같아 그냥 올립니다"라고 공개 이유를 밝혔다.
'제3의힘'의 한 관계자는 오마이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현재 원문을 가지고 있지 않지만 5월 24일 임수경 씨가 올린 원문을 읽었던 회원들의 말에 따르면 오늘 네티즌이 원문이라고 올린 내용이 임수경 씨의 글의 일부를 누락시켰거나 첨가시킨 것 같지는 않다는 것이 중론이다"라고 말했다.# @
원문이 밝혀진 후 임수경은 6월 8일 한겨레21에 실은 특별기고에서 무엇보다 참기 힘든 것은 지난 시기 어렵고 험난한 길을 함께 걸어온 운동권 내부에서의 비난이었음을 토로하며 "오늘 쏟아지는 이 모진 매를 매로 생각하지 마시고, 386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와 희망을 잊지마시기 바란다"며 사건에 대한 소회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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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4일 임수경이 쓴 원문
이하는 임수경이 쓴 글을 그대로 옮긴 원문이다. 부자연스러운 줄바꿈과 폰트 깨짐은 그대로 남겨두었다.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20/0000008781|출처]] [[http://archive.is/GknIt|아카이브]]
독자가 올린 [[임수경]]씨의 '[[386세대|386]] 술파티' 원문입니다. 이미 몇몇 사이트에올라갔지만 원문을 그대로 옮깁니다.
출처: 제3의힘 자유게시판

임수경 씨 원문입니다. 그 날 한밤중에 우연히 제3의 힘에 들어왔다가 이 글을 프린트해서 읽게 되었습니다. 임수경 씨 보호를 위해 공개를 회피하는 제3의 힘 입장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원문이 공개되지 않음으로 인해 쓸데없는 추측만 늘어나는 것 같아 그냥 올립니다.
안녕하세요.
미국에서 공부를 하다가 여러 가지 일로 잠시 서울에 온지가 벌써 한달이 훌쩍 지났습니다.
오자마자 긴장이 풀려서인지 많이 아팠고 - 거의 병원에 입원하기 직전의 상황까지 - 개인적인 일들이 많아 많은 분들께 연락도 못드리고 한달을 보냈습니다. 혹시 저를 아시는 분이 계시다면 연락도 안하고 괘씸하다고 생각하지 마시고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귀국을 한 가장 큰 이유는 [[5.18 민주화운동|5.18]] 전야제의 사회자로 행사준비를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오늘 저는 그날, 5월 17일에 있었던 일에 대해 여러분과 의견을 나누기 위해 이 자리에 들어왔습니다.
5월 17일 아침, 저를 포함한 전야제 관계자들은 아침 9시에 [[망월묘지공원|망월동 묘역]]에 가서 참배를 하는 것으로 일정을 시작했습니다.
가서보니 오후 1시에 여야 386 당선자들이 참배를 온다고 하더군요. 저는 광주에 온 김에 저와 절친한 [[임종석]]씨와 만날수 있을까 해서 그의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었습니다. 광주에 내려오는 중이라며 1시에 꼭 만나자고 하더군요. 저는 이미 참배를
한 상황이고 오후에는 전야제 리허설이 있어서 사실 망월동에 다시 오기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여러 선배들에게 이 기회에 한번에 인사를 하면 좋겠다 싶어서 다소 무리한 일정이었지만 일부러 다시 망월동으로 가서 그들을 만났습니다.
당선자들 뿐만아니라 낙선한 분들도 같이 오셔서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고, 저는 그 선배들을 보며 든든하고 흐뭇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분들은 광주에서 하루 머물 예정이라며 저녁에 시간이 나면 다시 만나자는 약속을 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5.18 전야제 행사에 참가했구요.
다소 서언이 길었는데 이야기는 지금부터 시작입니다. 전야제가 다 끝나갈 무렵 [[정범구]] 박사가 제가 있는 무대 앞으로 오셨습니다. 정박사님과는 기독교방송에서 같이 일한 적이 있어서 상당히 친한 관계입니다. 휴대폰 번호를 적어주시며 행사가 끝나면 꼭 한번 보자고 하시더군요. 저는 오후 6시부터 밤 11시까지 전야제 사회를 보며 저녁밥도 쫄쫄이 굶어가며내내 서있었습니다. 행사가 끝난 후 뒷풀이 장소에서 겨우 밥을 먹을 수있었지요. 그때 정박사님께 전화를 걸었더니 일행이 있으니 저보고 오라고 하시더라구요. 대부분 낮에 망월동에서 만난 분들이었지요. 저는 여러사람들 모인 곳에 가기가 뭐해서 처음엔 안 가겠다고 했는데 대여섯 차례의 전화를 계속 받고보
니 그곳에 안가는 것이 참 결례인 것 같은 생각이 들더라구요.
장소가 어디인지를 물으니 새천년이 어쩌구 NHK가 어쩌구 하시대요. 저는 [[새천년민주당|새천년 민주당]] 사람들이 [[일본방송협회|NHK]] 하고 인터뷰를 하고 있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알고보니 그곳은 새천년 NHK 라는 [[가라오케]]였습니다. 어쨌든 그곳으로 가서 그분들이 계신 룸으로 들어갔습니다. 찾을 것도 없이 적어도 7-8개의 룸이 있는 그 술집의 손님이 있는 방은 그 방이 유일했습니다.
문을 열자 [[송영길]] 선배가 아가씨와 어깨를 붙잡고 노래를 부르고 계시더군요. [[박노해]] 시인은 아가씨와 부르스를 추고 있었고 [[김민석(1964)|김민석]] 선배는 양쪽에 아가씨를 앉혀두고 웃고 이야기하느라 제가 들어선 것도 모르는 것 같았습니다. 마이크를 잡고있던 송영
길 선배님은 저를 보고 같이 노래를 부르자는 듯이 손짓을 하셨고 얼핏보기에 [[정범구]] 박사를 포함하여 [[김성호(1962)|김성호]], [[장성민]], [[이종걸]], [[김태홍(정치인)|김태홍]], [[이상수]] 의원 등이 있더군요. 저는 아가씨들이 있건 말건 선배들에게 인사나 하고 가려고 다가서는 순간 누군가
제 목덜미를 뒤에서 잡아끌며 욕을 하더군요. 야 이-년-아, 니가 여기 왜 들어와, 나가...
믿고싶진 않지만 이 말을 한 사람은 [[우상호]]씨였습니다.
술집 아가씨들은 놀라서 모두 저를 쳐다보았고, 저는 매우 당황했습니다. 우상호는 -미안합니다. 저는 이 사람에게 더이상 존칭을 붙여주고 싶지 않습니다.- 다시금 말했습니다.
이-놈의 기-집-애, 니가 뭔데 이 자리에 낄려고 그래? [[미친년|미-친-년]]...
저는 일단 방을 나와 저와 함께 온 전야제팀이 앉아있는 방으로 갔습니다. 흥분된 마음을 진정시키려고 참외를 하나 집어들었는데 우상호가 들어와 앉더군요. 그는 다시 말했습니다.
아 그 기-집-애, 이-상-한 년-이네. 아니 지가 뭔데 거길 들어와, 웃기는 기-집-애 같으니라고...
한두번도 아니고 저는 더이상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손에 들고 있던 참외를 테이블에 던지며 저도 욕을 한마디 했지요.
이런 [[씨발|씨-*]], 어따대고 이-년 저-년이야. 나두 나이가 30이 넘었고 애기엄만데 어디서 욕을 해...라고요.
여러분, 정말 죄송합니다. 시정 잡배들의 오고가는 대화도 아니고 참 부끄러운 마음 금할 길이 없습니다. 어쨌든 계속 하겠습니다. 주변에 앉아있던 사람들은 우상호에게 사과를 하라고 했지만 그는 끝까지 사과를 하지 않았습니다. 술이 꽤 취해있긴 하더군요. 자리에 앉은 사람들은 우상호에게 발언의 기회를 주었습니다. 그의 불만은 이것이더군요. 서울에 온지 3주가 지났는데 제가 연락을 안 했다는 것, 5.18 전야제 사회를 본다는 소리를 듣고 임수경 이름 또 팔아먹는구나 하고 생각했답니다. 발언중간 중간 이-놈의 기-집-애, 저-놈의 기-집-애, 이-년, 저-년 소리는 계속 되었구요. 그러더니 마무리를 하면서 자리에 있던 광주의 김태홍 당선자 에게 선배님, 죄송합니다...하더라구요.
저는 그랬죠. 국회의원이라고 선배님이고 죄송하냐고... 나는 내가 존경하던 선배에게는 술집 아가씨들 앞에서 이-년 저-년 소리 듣고 끌려나와야 하고, 같이 고생하던 후배에게는 사과 한마디 없이 국회의원한테만 미안하냐고...우리같은 사람들은 아가씨들 나오는 술집에서 양주마실 팔자가 안되니 나가서 소주나 먹자고..
. 그리고 나왔습니다. 모두 일어서는 순간 우상호가 테이불에 있던 양주의 병을 새로 따더군요. 그러거나 말거나 나왔습니다. 저는 그 자리에서 술을 한잔도 마시지 않았지만 계산대
로 갔습니다. 이미 정범구 박사가 계산을 했다고 하더군요. 저는 명세서를 조목조목 써달라고 했습니다. 양주 두병에 음료수, 안주가 서너가지로 22만 7천원이 나왔고, .양주 한병과 안주 한접시는 서비스였답니다.
저는 술집 아저씨한테 물었죠.
난 이집에 처음으로 오는데 이집은 처음 오는 사람한테도 서비스를 주느냐, 우리는 서비스 받을 일이 없으니 모두 계산서에 넣으라고 말이죠.
그 아저씨는 그냥 서비스로 드시라고 했고, 저는 계산을 하겠다고 부득불우겼습니다. 그 아저씨는 좀 황당했겠지
요. 서비스 주고 욕먹고...
아무튼 계산은 하되 다는 못 내겠다, 양주 한병은 우상호가 땄으니 저 사람에게 꼭 받아라, 이미 계산한 돈은 정박사에게 꼭 돌려줘라 당부를 한 후 20만원을 저와 함께 전야제 사회를 본 송선태 선배님의 카드로 계산을 했습니다.
계산대에서 실랑이를 하며 저는 그랬습니다. 낮에는 검은 넥타이 매고 망월동 참배하러 온 사람들이 밤에는 아가씨끼고 술 먹고 잘들 한다 등등... 술마시고 노래부르며 떠들던 그 방에서는 아주 조용했습니다. 아마도 제가 한 말을 다 들었으리라 생각합니다만 아무 반응이 없더군요.
가라오케 술집을 나서며 송선태 선배님에게 술값은 나중에라도 꼭 갚겠노라고 말했습니다. 사실 그때 저는 지갑을 갖고있지 않았습니다. 송선배님은 물론 괜찮다고 하셨지만 저는 정말 갚을 생각입니다. 그때 우상호가따라오더군요. 수경아, 이-놈의 기-집
애야, 너 거기 안 설래?? 아, 이 구제불능의 인간을 어쩌면 좋을까를 생각했습니다.
저는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우상호, 당신하고는 이제부터 끝이야, 우리서로 아는 척 하지 맙시다. 나 정말 당신하고 아는 척 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렇게 저는 돌아섰습니다. 돌아서는데 왜 그렇게 가슴이 아프던지요. 제 친구들은 다 압니다. 제가 존경하는 선배 세사람을 대라면 그중에는항상 우상호 형이 있었다는 것을...
저는 단순히 술취한 우상호에게 욕먹은 것을 이야기하고자 이글을 쓰고있지는 않습니다. 386, 사람들은 386이 어쩌구 하며 회의와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지만 저는 386이라는 이름에 자부심을 ��資笭윱求� 그 386의기반은 바로 5월의 광주입니다. 80년대의 학생운동은 그것으로 부터 시작되었고, 지속되었습니다. 광주를 떠나서는 386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래요. 저는 선배들이 아가씨 나오는 술집에서 술을 마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5월의 광주에서는 그래서는 안됩니다. 광주의 라디오방송에서는 시끄러운 음악을 틀지도 않습니다. 그 커다란 가라오케에 그들이 유일한 취객이었다는 것이 말
해주듯이 광주 사람들은 5.18이 되면 먹고 노는 일을 자제합니다.
그런데 다른 일도 아니고 망월동 참배를 위해 광주에 내려왔다는 사람들이, 386을 내세워 국회의원 선거전에 나와 그것을 기반으로 당선되었다는 사람들이, 낮에는 망월동에서 광주의 영령을 추모하던 사람들이 그렇게 광주의 정신을 밟아버렸습니다.
만약 5.18 유족이 이 사실을 안다면, 386의 순수성과 역사성으로 그들에게 표를 던진 유권자들이, 그들과 거리에서 어깨를 겨누며 민주주의를 외치던 동지들이, 5월 17일 하루종일 아들의 무덤 곁에서 참배객을 맞고 계시던 [[이한열]] 열사의 어머님이 이 사실을 아신다면 그들을 용서할 수 있을까요.
저는 감히 주문합니다. 386의 이름을 더이상 들먹이지 말던가, 망월동 참배가 아닌 놀러왔다고 하든가, 한때나마 그들이 국회의원에 당선되었음을 자랑스러워 했던 나 자신이 부끄럽습니다. 더이상 믿음도 희망도 걸 곳이 없음에 앞이 캄캄합니다.
다음날 아침 신문에는 386 당선자가 망월동 묘역을 참배했다는 기사가 신문마다에 났더군요. 술에 취했던 그들은 다음날인 5.18 아침에 [[김대중|대통령]]이 참석한 기념식에 마치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밤새 광주 영령을 진심으로 추모했다는 듯이 진지하고 엄숙한 표정을 짓고 있었겠지요.
제가 밥도 굶어가며 다섯시간씩 서서 전야제 사회를 보던 그 시간에 내가 존경하던 선배들은 아가씨와 술마시고 춤추고 노래를 부르고 있었으면서, 오히려 나보고 5.18에 이름을 팔아먹었다고 말한 사실 역시 용서할 수가 없습니다.
다음날 아침 10시경, 제 휴대폰 벨이 울리더군요. 저는 그들 중의 한명일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전화를 한 사람은 아이러니하게도 우상호와의 선거전에서 승리한 [[이성헌]] 선배였습니다. 망월동에서 만났는데 반가왔다는,서울에 올라오면 꼭 한번 만나자는 전화였습니다. 이성헌 선배는 제가 미국에 있는 동안 두차례 만난 것이 전부인데도 우리나라로 귀국하실때, 또 귀국을 해서도 저에게 미국까지 수시로 전화를 하던 분입니다. 전화를끊으며 생각했습니다. 왜 이성헌이 당선되고 우상호는 선거에서 떨어졌는가를...
그후 며칠 동안 저는 그들로부터 단 한통의 전화도, 제3자를 통한 메시지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어제 느닷없이 그 자리에 있었던 김성호 당선자가 전화가 와서 저녁을 함께 먹자고 하더군요. 통화를 하던 중 자연스럽게 그날의 사건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저는 제 의사를 밝혔습니다.
우상호와 아는척 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고 말이죠.
그런데 다음 날인 오늘, 우상호가 전화를 했더군요. 아마 김성호씨가 무슨 말을 했으리라 짐작합니다.
여보세요, 임수경씨 부탁합니다.
전데요.
수경아, 나 상호야.
누구시죠?
나 ;야, 우상호.
저는 우상호라는 사람을 모르는데요...
수경아, 미안하다.
실례했습니다... 저는 모릅니다.
저는 이렇게 전화를 끊었습니다. 전화를 끊으면서 새천년 NHK 는 가라오케를 나설 때 처럼 왜 그렇게 가슴이 아프던지요...
한낮 버스정류장에서 땡볕을 받으며 버스를 기다리다가 받은 전화 한 통, 그것은 지금 이 시간까지도 저를 심란하게 만듭니다. 제 어머니는 우상호에게 그러면 안 된다고 하셨고, 저와 친한 선배언니는 아주 잘했다고말했습니다.
저는 잘 한걸까요, 잘못한걸까요...
긴 글을 마칩니다. 결국 개인적인 이야기를 한 셈이 되어버리긴 했는데, 제 개인적인 이야기라기 보다는 모두가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네요.
임수경 올림
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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