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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0 고환율 시대 목전: 그들이 감추고 있는 것들



올해 들어 환율이 오르락내리락했지만 최근 갑자기 환율이 치솟고 있습니다. 지난 14일 기준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이 1480원대까지 급등했는데요. 한국은행과 국제결제은행의 분석에 따르면 원화 실질 가치는 2009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16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습니다. 심지어 지난달 원화 가치의 하락 폭은 지난달 기준 주요 13국 통화 중 둘째였다고 합니다. 유독 원화가 저평가를 받고 있단 얘기죠.


이유는 다양합니다. 외부적으로는 세계 경제가 휘청거리면서 글로벌 안전 자산으로 평가받는 달러가 강세를 보였고요. 내부적 요인을 꼽자면 외국인이 한국 주식을 대량으로 순매도했고, 서학 개미와 국민연금 등이 해외 투자를 늘려 달러가 유출됐다고 합니다. 이 외에도 우리나라가 달러를 주고 사들이는 에너지와 원자재의 수입 가격이 올랐고,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금리 인하를 늦추면서 높은 금리를 좇아 돈이 빠져나갔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이런 다양한 요인이 줄줄이 겹치면서 원화 가치가 크게 떨어졌다는 겁니다. 그런데 지금 나열한 여러 문제가 당분간 이어진다는 전망이 나오면서 시장에서는 환율이 1500원을 돌파할 것이란 말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1400원대에 안착하면서도 곳곳에서 우려가 나왔는데, 이제는 1500원이라니,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싶네요.



그래서 환율이 오르면 실질적으로 어떤 문제가 생기는지 궁금하시죠. 먼저 기업부터 살펴보겠습니다. 환율이 오르면 수출 기업 이익 증가로 보이지만, 현실은 정반대입니다.

대기업들은 미국을 비롯해 해외 생산 비율이 높고, 외화 채무가 많습니다. 여기서 외화는 곧 국제 결제 화폐인 달러겠죠. 환율이 오르면 빚을 갚는 데 훨씬 더 많은 돈이 든다는 겁니다. 실제로 LG에너지솔루션은 달러 부채가 6조8000억원 상당이라고 하는데, 환율이 10%만 올라도 세전 이익이 2388억원 줄어든다고 합니다. LG에너지솔루션만의 문제는 아니겠죠.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환율이 10% 오르면 대기업 전체 영업이익률이 0.29%포인트 떨어진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기업들은 수출 비중이 큰데도 원화 가치가 급락하면 매출 증가 효과도 상쇄되기 때문이라고 하죠.

중소기업은 상황이 더 심각합니다. 우리나라 대기업들은 보통 영업이익률이 5~6%이지만 중소기업은 3~4% 수준입니다. 이익의 마진이 그만큼 작다는 뜻이죠. 그런데 환율이 올라 수입 원자재 가격이 비싸지면 마진은 더 떨어질 수밖에 없겠죠. 안 그래도 미국에 수출하려면 관세까지 내야 할 판인데, 먹고살기가 정말 힘들어지는 셈입니다.


전문가들은 환율이 해외 시장과 무역에 의존적인 한국 경제의 아킬레스건이라고 평가할 정도입니다. 실제로 한국전략기획원이 발행한 ‘최근 고환율 기조가 국내 주요 산업에 미치는 영향 조사’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보면, 수출 의존도가 70%가 넘는 자동차, 조선, 전자 등 제조 기업들은 환율이 10% 오르면 영업이익이 무려 10~15%까지 떨어질 수 있다고 합니다. 대기업과 엮여 있는 중소 협력업체는 20% 이상 손실을 입게 되고요. 이 중에서도 영업이익률이 4%가 안 되는 소기업 가운데 30%는 아예 적자로 전환될 위험도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여파는 수출 경쟁력 약화, 경제 성장 둔화, 일자리 감소, 세수 감소 등 연쇄적인 피해로 이어지게 될 것입니다.


개인은 순식간에 지갑이 가벼워지는 마법을 겪을 수 있습니다. 수입품 가격이 올라 일상생활은 물론 여행, 투자 등 모든 경제 활동이 비싸집니다.

떠오르는 예가 너무나 많지만 대표적인 유가로 설명해보겠습니다. 유가가 오르면 배송비가 오릅니다. 아침에 집 문 앞에 있는 택배, 밤에 시켜 먹는 배달 등 모든 운송 수단이 비싸지는 것이죠. 그럼 뭐가 오를까요? 도미노처럼 배송되는 제품 가격도 오릅니다. 치킨집 사장님이 기존에는 배달 한 번에 2000원씩 냈는데, 갑자기 배달료가 3000원으로 오르면 이걸 본인이 부담할까요? 소비자 가격을 올리겠죠. 안 올렸다가는 본인이 망할 테니까요. 돌고 돌아 피해는 개개인에게 돌아간다는 겁니다.

당장 가족들이랑 여행을 갈 때도 원래 같으면 100만원이면 됐을 일정이 120만원, 130만원이 됩니다. 미국 주식에 투자하려면 원화를 달러로 환전해야 하는데, 원화 가치가 떨어져서 이마저도 손해 보는 장사처럼 느껴지고요. 지금 얘기한 것 말고도 타격을 입는 활동이 너무나 많은데요. 치솟은 환율은 사실상 ‘숨은 세금’처럼 모든 경제 활동의 족쇄로 작용하는 겁니다.



사태가 얼마나 심각한지, 우리 외환 당국은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처럼 긴급 대책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지난 14일이 일요일이었는데, 휴일 긴급 회동에서 달러 매도 개입, 유동성 공급, 외환스와프(국민연금 650억달러 한도 증액)를 논의했다고 하죠. 과거 IMF·금융위기처럼 총력전을 펼치고 있는 분위기입니다.


문제는 최근 환율이 주식시장의 변동성에 크게 휘둘리고 있단 건데요. 최근에 계속 ‘AI 버블’ 얘기가 나오면서 증시가 오르락내리락하고 있는데, 우리나라 환율도 덩달아 널뛰고 있습니다. 미국 AI 기업 주가가 빠지면 한국 증시의 대장주들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폭락하고, 외국인이 대량 순매도를 하면서 환율이 오르는 움직임이 계속되는 겁니다. 이에 전문가들은 외환보유액을 투입하거나 외환스와프를 확대하는 등 정부가 비상조치권을 발동해야 한다는 말까지 나옵니다.

일단 정부는 ‘환율 안정 최우선’ 기조로 이재명 대통령이 지침을 내렸고,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모든 수단 동원’ 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한국 경제를 위협하는 환율 쇼크. 트럼프의 관세 정책, 국내 정치 불안이 불쏘시개로 작용한 이후, 올해 내내 계속되는 모양새인데요. 고환율이 지속되면 기업 이익이 증발하고, 가계는 생활비 폭증에 시달리며, 시장은 패닉에 빠지게 됩니다. 하루빨리 대책 마련이 필요해 보입니다.

채제우 기자 zeus@chosun.com

https://n.news.naver.com/article/023/00039477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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