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들어 환율이 오르락내리락했지만 최근 갑자기 환율이 치솟고 있습니다. 지난 14일 기준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이 1480원대까지 급등했는데요. 한국은행과 국제결제은행의 분석에 따르면 원화 실질 가치는 2009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16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습니다. 심지어 지난달 원화 가치의 하락 폭은 지난달 기준 주요 13국 통화 중 둘째였다고 합니다. 유독 원화가 저평가를 받고 있단 얘기죠.
그래서 환율이 오르면 실질적으로 어떤 문제가 생기는지 궁금하시죠. 먼저 기업부터 살펴보겠습니다. 환율이 오르면 수출 기업 이익 증가로 보이지만, 현실은 정반대입니다.
대기업들은 미국을 비롯해 해외 생산 비율이 높고, 외화 채무가 많습니다. 여기서 외화는 곧 국제 결제 화폐인 달러겠죠. 환율이 오르면 빚을 갚는 데 훨씬 더 많은 돈이 든다는 겁니다. 실제로 LG에너지솔루션은 달러 부채가 6조8000억원 상당이라고 하는데, 환율이 10%만 올라도 세전 이익이 2388억원 줄어든다고 합니다. LG에너지솔루션만의 문제는 아니겠죠.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환율이 10% 오르면 대기업 전체 영업이익률이 0.29%포인트 떨어진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기업들은 수출 비중이 큰데도 원화 가치가 급락하면 매출 증가 효과도 상쇄되기 때문이라고 하죠.
중소기업은 상황이 더 심각합니다. 우리나라 대기업들은 보통 영업이익률이 5~6%이지만 중소기업은 3~4% 수준입니다. 이익의 마진이 그만큼 작다는 뜻이죠. 그런데 환율이 올라 수입 원자재 가격이 비싸지면 마진은 더 떨어질 수밖에 없겠죠. 안 그래도 미국에 수출하려면 관세까지 내야 할 판인데, 먹고살기가 정말 힘들어지는 셈입니다.
개인은 순식간에 지갑이 가벼워지는 마법을 겪을 수 있습니다. 수입품 가격이 올라 일상생활은 물론 여행, 투자 등 모든 경제 활동이 비싸집니다.
떠오르는 예가 너무나 많지만 대표적인 유가로 설명해보겠습니다. 유가가 오르면 배송비가 오릅니다. 아침에 집 문 앞에 있는 택배, 밤에 시켜 먹는 배달 등 모든 운송 수단이 비싸지는 것이죠. 그럼 뭐가 오를까요? 도미노처럼 배송되는 제품 가격도 오릅니다. 치킨집 사장님이 기존에는 배달 한 번에 2000원씩 냈는데, 갑자기 배달료가 3000원으로 오르면 이걸 본인이 부담할까요? 소비자 가격을 올리겠죠. 안 올렸다가는 본인이 망할 테니까요. 돌고 돌아 피해는 개개인에게 돌아간다는 겁니다.
당장 가족들이랑 여행을 갈 때도 원래 같으면 100만원이면 됐을 일정이 120만원, 130만원이 됩니다. 미국 주식에 투자하려면 원화를 달러로 환전해야 하는데, 원화 가치가 떨어져서 이마저도 손해 보는 장사처럼 느껴지고요. 지금 얘기한 것 말고도 타격을 입는 활동이 너무나 많은데요. 치솟은 환율은 사실상 ‘숨은 세금’처럼 모든 경제 활동의 족쇄로 작용하는 겁니다.
사태가 얼마나 심각한지, 우리 외환 당국은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처럼 긴급 대책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지난 14일이 일요일이었는데, 휴일 긴급 회동에서 달러 매도 개입, 유동성 공급, 외환스와프(국민연금 650억달러 한도 증액)를 논의했다고 하죠. 과거 IMF·금융위기처럼 총력전을 펼치고 있는 분위기입니다.
일단 정부는 ‘환율 안정 최우선’ 기조로 이재명 대통령이 지침을 내렸고,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모든 수단 동원’ 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한국 경제를 위협하는 환율 쇼크. 트럼프의 관세 정책, 국내 정치 불안이 불쏘시개로 작용한 이후, 올해 내내 계속되는 모양새인데요. 고환율이 지속되면 기업 이익이 증발하고, 가계는 생활비 폭증에 시달리며, 시장은 패닉에 빠지게 됩니다. 하루빨리 대책 마련이 필요해 보입니다.
채제우 기자 zeus@chosun.com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