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풍은 국물 속에서 자란다
"고기·내장·술 다 끊었는데 요산 수치가..."
'함정' 피하는 네 가지 식사 원칙
신체의 대사 균형이 깨졌다는 신호
통풍(痛風)은 이름 그대로 “바람만 스쳐도 아프다”는 말로 표현된다. 혈중 요산(Uric Acid)이 지나치게 쌓이면, 그것이 바늘처럼 뾰족한 결정체가 되어 관절에 박힌다. 그때 통증은 몸에서 나오는 경고음이라기보다 거의 형벌에 가깝다. 과거엔 술 좋아하는 중년 남성의 병쯤으로 여겨졌지만, 요즘은 다르다. 서구화된 식습관, 단백질 중심 식사, 잦은 음주와 비만 확산으로 20~30대에서도 환자가 늘고 있다. 대사 질환이 세대의 벽을 허물고 있는 것이다.
병원 영양 상담실에서는 비슷한 하소연이 반복된다. “고기, 내장, 술 다 끊었는데 요산 수치가 안 떨어집니다.”
그리고 그림자 범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직업은 오토바이 배달원. 점심은 늘 빠르고 간단히 해결했다. 단골집은 근처 작은 국숫집. ‘멸치로 국물 낸 잔치국수.’ 그 국수는 담백하고 깔끔했다. 문제는 그 ‘담백한 국물’이었다.
국물 속에 숨어 있는 과학 : 퓨린은 물에 녹는다
퓨린(Purine)은 단백질의 조각이다. 몸에서 이것이 분해되면 요산(Uric acid)이 된다. 통풍 식사 가이드는 단순하다. 퓨린이 많은 음식은 피하라. 고기, 내장, 멸치, 정어리, 고등어 같은 등 푸른 생선이 대표적이다.
그런데 많은 환자가 놓치는 대목이 있다. 퓨린은 ‘끓는 물’에 훨씬 잘 녹는다는 사실이다. 즉, 멸치를 오래 끓이면 퓨린이 국물로 스며들고, 그것은 응축된다. 멸치 한 마리를 씹어 삼키는 것보다 멸치로 우린 육수를 마시는 편이 훨씬 더 많은 퓨린을 섭취하는 셈이다. 겉으로는 건강식처럼 보이지만, 통풍 환자에게는 그야말로 독이다.
멸치국수 한 그릇 국물이 멸치 수십 마리에서 우러난 퓨린 농축액이라는 사실을 알았다면, 그 환자는 아마 그 담백한 국물을 다 먹지 않았을 것이다. 문제의 본질은 ‘무엇을 먹느냐’보다 ‘어떻게 조리했느냐’에 있었다. 통풍 환자 식사는 제한 식품 목록뿐 아니라, 조리법의 과학도 중요하다.
통풍 관리를 위한 네 가지 식사 원칙
① 고(高)퓨린 식품은 엄격히 제한한다. 100g당 퓨린이 150㎎ 이상이면 발작기뿐 아니라 안정기에도 피해야 한다.
육류 내장류(간, 곱창, 막창 등)
진하게 우린 육수(곰탕, 설렁탕, 해장국 등)
멸치·정어리·고등어 등 등푸른 생선
새우·홍합·가리비 같은 일부 해산물
모든 주류, 특히 맥주는 금기에 가깝다.(맥주는 효모에 퓨린 함량이 높아 요산 생성을 촉진한다.)
③ 물을 많이 마신다. 요산은 수용성이므로 물을 많이 마실수록 배출이 촉진된다. 하루 2리터, 2시간 간격으로 200㎖씩. 단순하지만 가장 효과적인 관리 전략이다. 단, 신장 기능이 떨어진 환자는 의사 지시가 필요하다.
④ 체중을 정상 범위로 유지하고 과도한 지방 섭취는 줄인다. 비만은 통풍의 배경이다. 지방이 많으면 요산 배설이 억제되고, 급격한 다이어트는 오히려 요산을 폭등시킨다. 따라서 점진적 감량이 원칙이다. 튀김·전·기름진 육류 대신 찜·구이·조림 등 담백한 조리법을 선택해야 한다.
통풍은 ‘평생 관리하는 대사 질환’
통풍은 단순히 한때의 통증이 아니다. 그것은 신체의 대사 균형이 깨졌다는 신호다. 식사 조절은 약물 치료의 보조가 아니라, 질환의 축을 이루는 치료법이다. “식단을 지켜도 안 낫는다”는 말은 절반의 진실이다. 조리법의 함정을 간과하면 아무리 절제해도 병은 교묘히 돌아온다.
대사 질환의 식사, 이제는 ‘정밀한 과학’으로
이 원리는 통풍에만 해당되지 않는다. 당뇨, 비만, 이상지질혈증, 지방간, 고요산혈증—모두 같은 대사 질환이다. 이들은 ‘음식 목록’의 문제가 아니라 ‘대사 과정’의 문제다. 먹은 음식은 소화·흡수를 거쳐 혈당, 지질, 요산, 염증 수치로 변환된다. 결국 중요한 건 음식 자체가 아니라, 그 음식에 포함된 영양 성분이 내 몸에서 어떻게 쓰이는가다.
식사 시간, 조리 온도, 섭취량, 개인의 신장 기능과 체중—모든 게 변수다. ‘건강식’이 ‘나쁜 식사’로 돌변하는 이유다. 따라서 앞으로의 대사 질환 관리법은 식품표가 아니라 인체 생리와 음식의 대사 흐름을 함께 읽는 정밀한 접근으로 바뀌어야 한다. 그래야만 “이 한 끼가 내 몸에 어떤 결과를 낳을지” 예측할 수 있다.
그 남성은 이후 멸치국수를 끊었다. 몇 주 뒤 요산 수치가 정상으로 돌아왔고, 더 이상 발작은 없었다. “그냥 국물 한 그릇이 문제였을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통풍은 국물 속에 숨어 있었다. ‘한 그릇의 습관’이 인생의 통증이 되기도 한다.
김형미 메디쏠라㈜ 연구소장·연세대 임상영양대학원 겸임교수
https://www.chosun.com/medical/2025/11/12/PY2O27SQ2JD6PEKWPYRQGFVX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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