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관]
AI 부정행위는 기존의 학업 평가 시스템 전반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으며, 단순히 처벌 강화보다는 AI의 '창의적 활용'과 '윤리적 사용' 기준을 명확히 설정하는 것이 시급한 과제로 지적됩니다.
최근 몇몇 대학의 학생 수백 명이 비대면 중간고사에서 생성형 인공지능(AI)을 활용하여 답안을 작성했다가 부정행위로 적발된 사례들이 연일 보도되었다. 제시된 해법은 시험을 대면으로 전환하거나, 단속과 처벌을 강화하라는 식이다. AI 사용 엄금, 모니터링 시스템 강화, 학칙 개정 등이 거론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이 사안이 던지는 화두는 그보다 훨씬 더 크고 중요해 보인다. 그것은 AI에 대한 대학의 인식에 관한 질문이다.
지금의 대학은 AI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아직도 전자계산기나 워드프로세서처럼 효율을 높여주는 ‘도구’ 정도로 취급하는 사람이 많다. 따라서 금지나 허용 여부만 중요하다. 하지만 AI를 우리의 생각을 확장해주는 ‘사유(思惟) 파트너’라고 인식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게다가 대학 교육 목적이 효율보다 사유라면 더욱 그렇다. 그래서 여기서 더 중요한 질문은 이 사유의 힘이 AI의 편리함 때문에 실제로 잠식되고 있는가의 여부일 것이다.
미국 MIT 미디어랩의 한 연구에 따르면, 생성형 AI를 이용해 글을 쓴 집단은 문장 완성도는 높았지만 뇌의 인지 활성도는 낮았다. 즉, 글은 잘 쓰지만 그만큼 사고력이 늘지는 않았다. 또 다른 연구에서는 AI 도움을 받은 집단의 비판적 사고 점수가 오히려 낮았다. AI가 생각을 ‘대신’ 해주면 사람은 생각을 멈춘다는 얘기다. 심리학자들은 이것을 ‘사고(思考)의 외주화’라 부른다. 이 현상은 우리가 AI를 생산성 향상의 도구로 인식할 때 피하기 어려운 귀결이다.
선도적 기업들은 이미 AI에 대한 인식의 전환을 시작했다. 기존 대학과는 다른 각도에서 인재를 교육하고 평가한다. 최고의 데이터 기업 팔란티어는 어느 대학을 졸업했는지 묻지 않는 ‘능력주의 펠로십’ 프로그램을 만들어 고졸 인재에게 AI와 함께 실제 문제를 해결하게 한다. 더 흥미로운 대목은 커리큘럼이다. 코딩보다 미국 헌정사, 정치철학, 윤리를 가르친다. 창업자 알렉스 카프는 이 프로그램을 시작하며 기술적 유능함보다 생각의 기반, 즉 역사와 정치, 철학적 맥락에 대한 판단 역량이 더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기업들은 이미 AI를 단지 생산성 강화 도구가 아니라 판단력 확장을 위한 파트너로 보고 있다.
이제라도 대학은 AI에 대한 인식부터 바꿔야 하지 않을까? 지금 필요한 것은 AI 활용법을 가르치는 기술 교육이 아니다(알아서들 잘하니 가르칠 필요도 없다). 가장 중요한 것은 AI가 제시한 답을 의심하고, 수정하고, 재구성하는 능력이다. ‘AI 시대의 문해력’은 정보를 읽는 능력이 아니라 기계가 놓친 의미를 해석하는 능력이다. AI의 답을 그대로 쓰는 건 사고의 위임이지만, AI의 답을 비틀어 새로 쓰는 건 사고의 진화다. 그래서 AI가 정답을 빠르게 내놓을수록, ‘왜’라는 질문은 더욱 소중해진다.
우리 정부는 지금 ‘AI 3대 강국’의 깃발을 내걸고 GPU 확보와 소버린 AI 모델 제작, 데이터센터 건설 등에 속도를 내고 있다. 정작 ‘AI를 무엇으로 보는가’라는 근본적인 사회적 인식까지는 고민할 여력이 없는 것 같다. 하지만 진짜 AI 강국은 단지 GPU를 더 많이 보유한 국가가 아니다. 활용률은 최고인데 사고력은 도태된 AI 사용자들로 넘쳐나는 국가도 아니다. AI를 파트너로 삼되 사고와 책임을 외주화하지 않는 시민을 길러내는 국가이다.
지금 전 세계의 대학들은 지식을 전달하고 융합하는 단계를 넘어서 인간 지능과 AI를 조율하고 융합하는 수준으로 진화하고 있다. 지식 융합의 시대를 넘어 지능 융합의 시대로 전환하고 있는 셈이다. AI와 ‘함께’ 배우는 교육만이 학생을 미래로 보낼 것이다.
https://www.chosun.com/opinion/chosun_column/2025/11/20/6FDZQG2ND5HVJF5WAADK6ADLH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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