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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일상화된 '희망 퇴직' 패러다임


실적 양호한 기업도 앞다퉈 인력 구조조정

‘희망퇴직의 일상화’ 가속

보상 확대가 인재 탈출 부추기나

고용시장 위축은 과제

희망퇴직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고 있다. 과거 근로자에게 '사망선고'로 여겨졌던 구조조정 수단이, 이제는 경력 전환의 기회로 주목받고 있다. 기업이 충분한 보상과 선택지를 근로자에게 제시하면서 희망퇴직을 자발적으로 신청하는 근로자들도 늘고 있다. 다만 희망퇴직의 일상화가 고용시장 전반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함께 제기된다.

13일 업계에 따르면, LG전자·SK브로드밴드·롯데멤버스 등 주요 기업들은 올해 줄지어 희망퇴직을 시행하고 있다. 9월을 기점으로 최근 두 달간 희망퇴직을 공지한 상장사는 10곳이 넘는다. 재무구조 개선에 나선 롯데그룹은 롯데온·롯데면세점 등 다수의 계열사에서 희망퇴직을 진행 중이며, LG전자도 전사 차원의 희망퇴직을 2분기 연속 추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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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퇴직을 시행하는 주된 이유는 눈앞에 닥친 재무적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서다. 근속연수가 길고, 임금이 높은 인력을 구조조정해 재무 부담을 낮추겠다는 계산이다. 그러나 그간 희망퇴직은 저성과자, 50대 이상 등에 집중되면서 사실상 '강제 해고'처럼 인식됐다. 평생직장에서 해고되면 갈 수 있는 기업이 한정적이라는 불안감에 희망퇴직을 거부하려는 조직적 움직임도 적지 않았다.


권기욱 건국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는 "우리나라는 해고가 사실상 어렵기 때문에 합법적 구조조정 수단으로 희망퇴직이 유일한 선택지가 되는 경우가 많다"며 "일시적인 비용은 상당하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기업이 해고를 유인해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합리적인 방법을 택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실적과 무관한 희망퇴직…조직 효율화가 핵심

최근에는 영업이익이나 실적이 우수한 기업들도 줄지어 희망퇴직에 나서면서 흐름이 바뀌고 있다. 재무 상태와 관계없이 수익성 강화와 조직 재편을 위한 희망퇴직이 확산하는 분위기다. 대표적인 산업이 연일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하고 있는 은행업계다. 업계에 따르면, 국내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우리·하나·NH농협)은 매년 2000명이 넘는 희망퇴직을 단행하는 방식으로 인력을 감축하고 있다.

전성민 가천대 경영학과 교수는 "과거 IT(정보기술) 붐 시절 전통 기업 인재들이 고성장하던 스타트업 등으로 이동해 커리어를 개발하려고 했던 것과 비슷한 분위기"라며 "좋은 조건으로 희망퇴직이 가능하다면 젊은 나이에 퇴직하고, 새로운 기회를 빨리 확보하는 편이 낫다고 판단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제조업 분야에서 활동하는 한 헤드헌터도 "최근에는 대기업들도 연달아 희망퇴직을 시행하면서 우수한 조건을 갖춘 고연차급 인재들이 이직 시장에 늘어나고 있다"며 "10년 차 이상의 경력을 갖춘 관리자급 인력을 확보하려는 중견기업들 사이에서 희망퇴직자들은 수요가 꽤 있는 편"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인공지능(AI) 도입으로 인력 효율화가 필요한 업종에서도 희망퇴직은 기업과 근로자 모두를 만족시키는 대안으로 꼽힌다. 3분기 역대 최대 실적을 기록한 크래프톤은 12일 연차와 직급에 상관없이 전 직원에게 '자발적 퇴사 선택 프로그램'을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크래프톤 측은 "AI 전환이라는 시대적 변화 속에서 구성원이 자신의 성장 방향을 주도적으로 설계하고, 새로운 도전에 나설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취지"라고 전했다. 기업의 생산성 향상과 직원의 경력개발을 위한 수단으로 희망퇴직을 시도한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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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대 위로금 경쟁…희망퇴직이 '이직 기회'로

대기업들도 희망퇴직에 적극 나서면서, 이에 대한 근로자의 인식도 빠르게 변하고 있다. 수억원에 달하는 위로금과 자녀 학자금 지원 등 보상 수준도 대폭 개선되면서 경쟁력 있는 직원들이 충분한 보상을 받고 이직할 기회가 된 것이다. 지난해 희망퇴직을 신청받은 엔씨소프트는 근속 기간에 따라 억대에 달하는 위로금을 지급한다는 방침에 500명가량의 자발적 신청자가 몰렸다. SK텔레콤도 지난해 희망퇴직 위로금으로 3억원을 책정한 바 있다.

엔씨소프트는 3분기 실적 발표 컨퍼런스콜에서 "지난해 희망퇴직은 중복되거나 지원 조직을 대상으로 효율화를 단행한 전략적 조치였다"며 "핵심 프로젝트 인력은 건드리지 않았으며, 인력 개편으로 인센티브 구조를 바꿔 오히려 개발 속도를 높일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권 교수는 "과거에는 희망퇴직 대상자가 되면 회사에서 실패한 사람이라는 낙인이 찍혔지만, 이제는 보상을 받고 더 나은 곳으로 이직할 기회가 열렸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더 많다"며 "평생직장을 기대하는 근로자들이 크게 줄었고, 실업급여 등 고용 안전망이 강화된 것도 인식 변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다만 기업의 희망퇴직이 이른바 '역선택'으로 인해 장기적인 성장에는 독이 될 수도 있다. 희망퇴직을 계기로 유능한 인재가 먼저 회사를 떠나고, 저성과자만 회사에 남아 조직 성장을 저해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어서다. 전 교수는 "시장이 요구하는 단기적 성과를 달성하기 위해 희망퇴직을 시행했다가 핵심 인재들을 놓치는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며 "희망퇴직 시행 시 성과에 따른 허들을 마련하는 등 전략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희망퇴직이 일상화되면서 인원 감축이 신규 채용으로 이어지지 않는 경우 노동시장 전반이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매년 2000명가량의 희망퇴직을 추진하는 은행권에서도 신입 채용을 늘리기보다는 AI 등으로 인력을 대체하고 있다. 권 교수는 "희망퇴직 실행 이후 노동력을 AI 등으로 대체하는 경우 고용시장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어 희망퇴직을 긍정적으로만 바라보기에는 여전히 한계가 있다"고 덧붙였다.

(시사저널=오유진 기자)

https://v.daum.net/v/20251113144848517




https://www.khan.co.kr/article/202511131134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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