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릎 꿇고 尹에게 설명
"정상 군사작전이었으면 빵점"... 사전 모의 부인
여인형 전 국군방첩사령관이 지난해 5월 말~6월 초 계엄을 언급한 윤석열 전 대통령 앞에서 무릎을 꿇은 것에 대해 “군은 계엄 훈련이 되어 있지 않아 불가능하다는 실태를 말씀드린 것”이라고 법정에서 증언했다.
여 전 사령관은 이날 서울중앙지법 형사25부(재판장 지귀연)에서 열린 윤 전 대통령의 내란 우두머리 혐의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이같이 말했다. 그는 앞서 검찰 수사에서 계엄 얘기를 꺼낸 대통령에게 무릎을 꿇었다고 진술한 뒤, 중앙지역군사법원에서 열린 내란 중요 임무 종사 혐의 재판에서 이에 대해 “약주가 과해 돌발적으로 한 행동”이라고 했었다. 그날의 앞뒤 상황을 상세하게 밝힌 것이다.
이 모임은 서울 종로구 삼청동 안가에서 열렸고, 윤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 장관, 여 전 사령관이 참석했다. 특검은 이 자리에서 여 전 사령관이 무릎을 꿇고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를 말렸다고 본다.
여 전 사령관은 “대공·간첩 수사의 어려움에 대해 말씀드렸고, 대통령께서 나라 걱정과 시국 걱정을 했다”며 “대통령께서 감정이 격해지셔서 헌법이 대통령에게 보장한 비상대권 조치도 언급하셨다”고 했다. 이어 “제가 속으로 ‘국군통수권자이신데 계엄에 대해서 어떤 훈련이 준비돼 있는지 모르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현재 우리 군이 비상계엄 선포를 상정한 훈련을 하지 않고 있어, 준비가 돼 있지 않다고 말해야겠다고 생각했다는 얘기다.
여 전 사령관은 “육군 30만명은 개전 초기엔 전방 지역에서 전투하느라 바쁘다”며 “사회 질서에 동원될 사람은 없다”고 했다. 이어 “전시도 그럴진대 평시에 무슨 계엄을 하나. 훈련해 본 적 없고 한 번도 준비한 적이 없다”고 했다. 헌법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를 보장한다고 해도 실제 계엄에 군이 참여할 수 없는 실태를 말했다는 것이다. 무릎을 꿇은 데 대해선 “일개 사령관이 무례한 발언을 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다만 여 전 사령관은 “대통령께서 계엄을 한다, 안 한다 구체적으로 말씀하신 게 아니다”라며 “국군통수권자이신데 계엄에 대한 군의 훈련 준비 상태를 전혀 모르시는 것 같아 실태를 말씀드린 것”이라고 했다. 구체적으로 작년 12월 3일의 비상계엄 선포의 위헌·위법성을 따져 만류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제가 대통령의 구체적인 계획에 대해 반대한 것은 아니다”라며 “제가 그럴 계제도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국회·선관위 출동은 ‘빵점’ 작전... 사전 준비 아냐"
한편 여 전 사령관은 비상계엄 당시 방첩사 요원들이 국회와 선거관리위원회로 뒤늦게 출동한 것에 대해선 “정상적인 군사 작전에서 이렇게 했다면 ‘빵점’”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제 기억으로는 문서화된 바가 없다”며 “구두로 전파됐다”고 했다. 통상의 군사작전이었다면 명령이라도 내려왔을 거란 얘기다.
여 전 사령관은 계획 문서, 협조 문서 하나 없이 방첩사, 육군수도방위사령부, 육군특수전사령부가 문서 없이 말로만 작전을 할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재판부를 향해 “그날(작년 12월 3일) 방첩사 요원들이 몇시에 출동했는지 아시느냐”며 “새벽 1시가 넘어서 나갔다”고 했다. 계엄 선포 이후 2시간이 지난 시점에서야 출동했다는 것이다. 여 전 사령관은 “말단 소위가 해도 그렇게 작전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 같은 여 전 사령관의 증언은 방첩사가 비상계엄을 사전에 준비했다는 의혹을 부인하는 취지로 풀이된다. 여 전 사령관은 “비상계엄 당일 방첩사 직원들은 과장해서 말하면 저 빼고 다 술을 마셨다. 정기인사철이었기 때문”이라며 “우리 방첩사가 뭔가 준비하고 조직적으로 움직였다면 계엄 당일 정상적으로 퇴근할 수 있었겠느냐”고 했다. 여 전 사령관은 잠시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이날 법정에선 여 전 사령관이 지난해 10~12월 휴대전화에 썼다 지운 이른바 ‘여인형 메모’가 공개됐다. 검찰은 앞서 여 전 사령관 휴대전화에서 이재명·한동훈 등 이름이 담긴 메모 등을 복원하고 계엄을 사전에 준비한 정황이라고 주장해왔다. 이에 여 전 사령관은 “(작년) 12월 4일 오후까지도 우리 방첩사 요원들은 명단의 ‘김어준’을 ‘김호중’으로 알고 있었다”며 “수사단장이 정치에 관심이 없어서 우원식이 국회의장인지도 몰랐다”고 했다. 이어 “‘명단 명단’ 이야기하는데 허술하다”고 말했다.
특검 측이 여 전 사령관이 작년 11월 4일 ‘중견 간부 이상이 자발적으로 동조할 수 있도록 하는 조치’라고 쓴 메모를 제시하면서 무슨 의미인지 묻자 여 전 사령관은 “저 메모 하나 보고 (계엄에) 동의하게 했다는 견강부회 같은 말에 억장이 무너진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대한민국 (군) 중견 간부 이상 중에 계엄에 동의하는 사람이 있겠느냐”면서 “월급 많이 올려주면 할 수 있는 거냐, 대한민국 군인이 그정도냐”라고 했다.
한편 여 전 사령관은 이밖에 특검 측 질문에 “제 재판에서 충실하게 소명하겠다”면서 대부분 증언을 거부했다. 자신의 내란 혐의 재판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 자세히 말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특히 휴대전화에서 복원된 메모들에 대해 “그때그때 생각나는 아이디어를 썼다 지웠다 한 걸 포렌식해서 조각조각 끄집어내고 취사 선택해 멋대로 스토리라인을 만들었다”면서 메모와 관련된 질문에 대부분 답변을 거부했다
이민준 기자
김은경 기자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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