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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 여파 때문에 한국 떠난 기업 안 돌아온다



올해 상반기(1∼6월) 해외 투자로 빠져나간 기업이 2400곳이 넘지만 국내로 복귀한 ‘유턴 기업’은 5곳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미국이 상호관세를 본격화한 4월 이후 해외에 투자한 기업 수는 폭발적으로 늘고 있어 국내 기업들의 ‘엑소더스(대탈출)’ 현상이 더욱 심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23일 한국수출입은행 해외직접투자 통계에 따르면 올 상반기 해외에 신규로 진출한 법인 수는 2437곳으로 전년 동기(1488곳) 대비 63.8% 증가했다. 해외 신규 법인 수는 보통 분기마다 600∼700곳이었는데 올 2분기(4∼6월)엔 1745곳이었다. 지난해 2분기(732곳)와 비교하면 138.4% 급증했다.

국내 기업의 해외 진출이 늘어난 건 미국발 관세 영향으로 풀이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4월 2일(현지 시간) 한국과 세계 각국에 전례 없는 상호관세를 부과했다. 이에 따라 국내 수출 기업들은 관세 불확실성에 대응하기 위해 현지로 생산 기지를 옮기고 있다. 올 2분기 미국에 신규 설립된 법인 수는 264곳으로 1년 전(149곳)보다 77.2% 늘었다. 미국의 현지 투자 압박과 관세 장벽으로 향후 기업들의 미국 투자는 더욱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해외에 나가는 기업은 늘어나는데 돌아오는 기업은 손에 꼽는다는 점이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김성원 의원실이 산업통상부로부터 제출받은 ‘유턴 기업 현황’에 따르면 유턴 기업으로 선정된 기업은 상반기 5곳이 전부였다. 3분기(7∼9월) 6곳이 추가됐지만 올해도 전년(20곳) 대비 감소 추세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유턴 기업’은 정부가 해외로 나간 기업의 복귀를 위해 지원하는 기업을 말한다.

유턴 기업으로 선정된다 해도 상당수가 국내로 돌아올 마음을 접고 있다. 2013년 ‘유턴 기업 지원법’이 제정된 이후 유턴 기업으로 선정된 200곳 가운데 한국에 정착한 기업은 68곳뿐(34%)이었다. 나머지 87곳(43.5%)은 국내 투자 계획을 철회하는 등의 이유로 복귀하지 않았고, 45곳(22.5%)은 자격 요건을 맞추지 못해 중도에 선정이 취소됐다.



계속해서 해외로 나가는 기업은 느는데 들어오는 기업이 줄어들면 산업 공동화 현상을 피하기 어렵다고 전문가들은 우려한다. 보호무역주의 추세 강화로 세계 주요국이 생산 시설을 자국으로 복귀시키기 위한 ‘총력전’에 나서는 상황에서 정부가 확실한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는 “해외 진출 기업 대부분은 비용 경쟁력 때문에 해외 이전을 택했다”며 “미국, 일본 등 경쟁국보다 낮은 인건비, 완화된 규제, 혹은 복귀에 따른 파격적 혜택을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내 복귀를 준비하는 기업 수는 매년 줄고 있다. 제도 시행 첫해인 2014년 27곳이 유턴 기업으로 선정됐지만 이후 2021년(26곳)부터 꾸준히 감소하고 있다. 올해는 9월까지 11곳만 선정되면서 규모가 더 쪼그라들었다.



유턴 기업으로 선정된 200개 기업 가운데 87곳(43.5%)은 경영 악화, 국내 투자계획 철회, 폐업 등의 이유로 여전히 국내 복귀를 완료하지 않았다. 중국으로 생산 거점을 이전했던 한 화학업체는 2020년 유턴 기업으로 선정된 후 정부로부터 2400만 원의 컨설팅 비용도 지원받았지만 ‘내부 투자 계획 변경’을 이유로 지금도 미복귀 상태다.


국내 제조 생태계가 흔들리고 있는 점도 기업들의 발목을 잡는 이유다. 2023년 중국에서 복귀를 시도하다가 포기한 부품업체 대표 B 씨는 “황폐해진 산업단지에 혼자 불 켜고 들어가 봐야 소용이 없다”며 “기업이 생산을 하려면 협력사 등 여러 업계가 함께 모여 생태계를 이뤄야 하는데, 국내에서는 사실상 불가능하니 복귀 메리트가 없었다”고 했다.

정부 지원의 실효성이 부족한 것도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대표적인 것이 법인세 감면 혜택이다. 현행 기준 유턴 기업은 법인세를 7년간 100%, 이후 3년은 50%를 감면받을 수 있다. 하지만 2021년부터 2024년까지 최근 4년간 유턴 기업이 받은 법인세 감면액은 약 81억 원에 불과하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첨단 산업처럼 초기 투자 비용이 많이 드는 사업은 법인세를 감면해줘도 실제 감면 혜택까지 긴 시간이 소요된다”며 “국내 복귀 초기 비용을 절감해주는 등 복귀 혜택을 미리 앞당겨서 주는 방식을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해외 진출 기업 10곳 중 9곳 “유턴 계획 없다”

해외로 이전한 국내 기업을 다시 국내로 불러들이는 일은 쉽지 않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2022년 8월 해외 진출 기업 306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93.5%가 국내로 돌아올 계획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기업은 국내 사업 환경의 가장 큰 어려움으로 근로시간, 임금 등에 대한 노동 규제를 꼽았고, 두 번째는 법인세 등 세제였다. 당시 윤석열 정부가 7월 첫 세제 개편안을 내놓고 법인세 최고세율을 24%로 1%포인트 낮추는 방안을 발표한 때였다.

3년이 지난 지금 국내 기업 환경은 더 악화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재명 정부는 세제를 ‘정상화’하겠다며 법인세율을 다시 1%포인트 높이는 방안을 첫 세제 개편안에 담았다. 근로시간에 대한 논의는 주 52시간에서 더 나아가 주 4.5일제로 확대됐다. 산업재해 관련 규제가 대폭 강화되고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2·3조 개정안)과 2차에 걸친 상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기업 활동이 크게 위축됐다.

박양균 한국중견기업연합회 정책본부장은 “미국 관세 등 대외적 불확실성과 함께 노란봉투법, 주 52시간 규제 등 한국의 경영 환경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며 “유턴 기업 경쟁력 활성화를 위해 복귀 지역의 자율성을 보장하고 보조금을 파격적으로 증액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종=정순구 기자 soon9@donga.com

세종=김수현 기자 newsoo@donga.com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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