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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가 만연한 한국 사회...홧병은 '정신건강' 문제


국인의 정신건강, 이제는 분노에 주목해야 할 때

그야말로 분노가 만연한 한국 사회이다. 최근에 서울대 행복연구센터에서 발표한 흥미로운 연구 결과를 보았다. Psychological Trauma지에 발표된 이 연구 결과에 따르면, 한국 성인 중 무려 47.3%에서 울분(鬱憤)이 지속 또는 증가되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doi: 10.1037/tra0001610). 울분의 사전적 정의는 ‘답답하고 분함’이다. 그리고 이 답답하고 분함으로 인해 발생하는 대표적인 정신장애를 화병(火病)이라고 한다. 화병은 한국의 문화관련증후군(culture-bound syndrome)으로 여겨지는데, 화병은 답답하고 분한 마음이 해소되지 않아, 억울하고 분함이라는 대표적인 심리 증상과 함께, 가슴 답답함, 위로 열이 치밀어 오름, 목이나 명치에 무언가 막고 있는 느낌, 두통, 어지럼증, 소화장애, 불면 등의 신체 증상도 함께 발생하는 병이다. 혹자는 화병을 ‘옛날 병’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렇지도 않다. 필자의 조사에 따르면, 한국 MZ 세대에서의 화병 유병률은 약 36%로, 젊은 세대에서도 화병은 매우 흔한 정신건강 문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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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한국 사회에 만연한 분노와 울분, 그리고 이와 관련된 정신장애인 화병은 단순히 개인의 문제로 치부할 수 없는 사회적 현상이다. 그리고 이는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와 깊은 연관이 있으며, 이에 대한 심층적인 이해와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예를 들어, 한국 사회의 심한 경쟁 구조, 사회적 불평등과 불공정, 경제적 양극화, 청년 실업, 주거 불안, 세대 간 갈등 등 많은 사회적 문제가 분노의 맥락에서 한국인의 정신건강을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디지털화되고 있는 사회의 모습 역시 화병의 만연화에 기여한다. 대부분의 화병은 인간관계에서 비롯되는데, 디지털 세계에서의 온라인 기반 인간관계는 빠르며, 맺고 끊음이 쉽다는 특징이 있다. 그러다 보니 오프라인 기반 인간관계에 비해, 자신과 타인의 다름을 자신의 변화를 통해 해결하기보다는, 자신에게 맞는 타인을 찾는 방식의 얕고 넓으며 빠른 인간관계가 흔해졌다. 이는 결국 인간관계를 유지하는데 있어서 인격적인 성숙 기회가 점차 부족해진다는 것을 의미하며, 예상컨대 우리는 그래서 앞으로 인간관계에서 더 ‘불편해지고’, 타인을 문제로 규정해 ‘분노를 쉽게 느끼게 될 것’이다.

화병은 그 자체로도 개인의 삶의 질을 심각하게 저해하지만, 다양한 신체 증상을 동반하여 (오늘날 문제가 되고 있는) 사회의 의료 부담을 가중시킨다. 필자의 연구에 따르면, 화병 증상이 자살사고의 존재와도 유의한 관련이 있을 정도로 개인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의 중요한 건강 문제이다. 하지만 이런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정신건강실태조사와 같은 전국 조사에서는 부족하게 조사되고 있는 것이 이 분노, 그중에서도 특히 분노를 억제하고 참는 것과 관련된 화병이다. 비록 소아·청소년 대상 정신건강실태조사나 성인 대상 정신건강실태조사에서 분노 문제를 조사하고 있기는 하나, 주로 분노 조절의 어려움이나 충동 조절의 어려움 등, 분노 표출(anger-out: 화를 참는 것이 어렵다)과 관련된 조사에 국한된다. 하지만 더 많은 한국인들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충분히 해소되지 못한 분노 또는 불평등과 불공정을 견뎌내고 있는 분노 억제(anger-in: 화를 많이 참고 있다)와 관련된 문제가 아닐까? 필자는 이러한 문제, 즉 대규모 역학조사에서 화를 참아내고 있는 것에 기반한 정신건강 문제가 부족하게 조사되고 있는 상황에서, 최근 머신러닝을 사용해 단축형 화병 스크리닝 척도(2개 문항으로 구성되어, 화병의 존재를 스크리닝)를 개발하여, 향후 대규모 역학조사에서 화병을 빠르게 스크리닝하는 활용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다.


한국 사회에 만연한 분노와 울분, 그리고 이로 인한 화병은 더 이상 개인의 문제로만 치부할 수 없는 중대한 사회적 이슈이다. 이는 단순히 개인의 삶의 질을 저하시키는 것에 그치지 않고, 사회 전반의 건강과 발전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이 문제의 심각성을 깊이 인식하고, 그 해결을 위해 다각도로 접근해야 한다. 정부, 의료계, 학계, 그리고 시민 사회가 협력하여 울분과 화병의 근본 원인을 파악하고, 이를 해소할 수 있는 실질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할 때이다. 동시에, 개인적 차원에서도 스트레스 관리와 화를 조절하는 능력을 향상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 한국인의 정신건강, 특히 분노 관리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지원이 확대된다면, 우리는 더욱 건강하고 행복한 사회로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권찬영 동의대한방병원 한방신경정신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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