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전원합의체에는 조희대 대법원장과 대법관 12명이 참여한다. 이번 판결은 조 대법원장이 작년 12월 취임 후 전원합의체 재판장을 맡아 처음 내놓은 판결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23일 A씨가 전 남편을 상대로 낸 혼인 무효 청구 소송의 상고심에서 대법관 전원 일치로 각하 판결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가정법원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혼인 관계를 전제로 수많은 법률 관계가 형성돼, 그 자체의 무효 확인을 구하는 것이 관련된 분쟁을 한꺼번에 해결하는 유효·적절한 수단일 수 있다”며 “이혼으로 혼인 관계가 이미 해소된 이후라고 하더라도 혼인 무효의 확인을 구할 이익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무효인 혼인은 처음부터 혼인의 효력이 발생하지 않지만, 이혼의 경우 혼인 관계가 해소돼도 이혼 전에 혼인을 전제로 발생한 법률 관계는 여전히 유효하다”고 밝혔다. 이혼과 달리 혼인 자체가 무효라면 민법상 인척간의 혼인 금지 규정, 형법상 가까운 친족의 재산 범죄를 처벌할 수 없도록 한 ‘친족상도례(親族相盜例)’ 규정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가사와 관련된 빚에 대해 배우자에게 연대 책임을 묻는 ‘일상가사채무’도 적용할 수 없다. 이 때문에 이혼을 했더라도 혼인이 무효라는 것을 확인할 실익이 있다는 것이다.
A씨는 2001년 남편과 결혼했다가 2004년 이혼했다. A씨는 이혼 이후 15년이 지난 2019년 “혼인 의사를 결정할 수 없는 극도의 혼란과 불안, 강박 상태에서 실질적 합의 없이 혼인 신고를 했다”며 혼인 무효 소송을 냈다. A씨는 이혼이 아닌 혼인 무효 상태가 되면, 미혼모 가족으로 인정받아 국가나 지자체의 여러 지원 혜택을 받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1·2심은 종전 대법원 판례에 따라 A씨의 청구를 각하(却下)했다. 각하는 소송 요건을 갖추지 못한 사건에 대해 법원이 심리를 하지 않고 종결하는 것이다. 앞서 대법원은 1984년 “혼인관계가 이미 이혼 신고에 의해 해소됐다면, 혼인 무효를 확인받을 법률상 이익이 없다”고 판결했는데 이를 따른 것이다. 당시 대법원은 “단순히 여성이 혼인했다가 이혼한 것처럼 호적상 기재되어 있어 불명예스럽다는 사유만으로는 (혼인 무효) 확인의 이익이 없다”고 판단한 바 있다.
대법원 관계자는 “이번 판결은 이혼 후 혼인 무효 확인 청구에 대하여 포괄적 법률 분쟁을 한번에 해결하는 수단으로서 혼인 무효 확인의 이익을 인정한 것”이라며 “무효인 혼인 전력이 잘못 기재된 가족관계등록부를 정정할 수 있게 되는 등 국민의 법률 생활과 관련된 분쟁을 실질적으로 해결될 수 있도록 당사자의 권리 구제 방법을 확대하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방극렬 기자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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