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부, 2040년 수요 전망 공개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산업, 전기차·히트펌프 확산까지 겹치면서 한국의 전력 수요가 전례 없는 속도로 증가할 전망이다. 전 세계적으로 ‘전기의 시대’가 열리는 가운데, 이재명 정부의 첫 중장기 전력 수급 계획도 이러한 흐름에 맞춰 전력 시스템 전반을 재조정하는 방향으로 설계될 전망이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22 제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 수립을 위한 전력 수요 전망을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2040년 전력 소비량은 최소 657.6테라와트시(TWh)에서 최대 694.1TWh에 이를 것으로 예상됐다. 직전 11차 전기본(2038년 624.5TWh)보다 최대 70TWh 가까이 늘어난 수치다. 늘어나는 수요가 서울시 연간 전력 소비량(50TWh)의 1.4배로, 원전 3~7기가 필요한 전력량이다. 새 전기본을 짜는 과정에서 전력 수요 증가 폭이 이처럼 커진 것은 수요 예측 방식을 전면 개편한 2013년 6차 전기본(103.7TWh 증가) 이후 처음이다.
과거엔 경제가 성장하면 전기 수요도 따라 늘어나는 단순 패턴이었다. 이제는 새로운 수요가 폭발적으로 생겨나고 있다. AI 데이터센터, 반도체 클러스터, 전기차·전기난방 같은 추가 수요가 2년 전 11차 전기본에선 전체 전망치의 10%였는데, 이번에는 21%로 커졌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 석유·가스 사용을 전기로 바꾸는 ‘전기화’ 수요다. 정부는 이런 불확실성을 감안해 이번에 처음으로 단일 수치 대신 최소값과 최대값 두 가지를 동시에 제시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최대값조차 현실보다 낮게 잡혔을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한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지난해 말 발표한 ‘세계 에너지 전망 2025’에서 “전기의 시대가 왔다(The Age of Electricity is here)”고 선언했다. IEA는 현행 정책이 유지되는 시나리오에서도 2035년 세계 전력 수요가 2024년보다 약 40% 늘고, 탄소중립 경로에 가까워질수록 50%를 웃돌 것으로 전망했다.
우리 정부의 이번 12차 전기본 수요 전망도 같은 흐름이다. 2040년 전력 소비량은 최대 694.1TWh(테라와트시)로 예측됐고, 1년 중 가장 많은 전기를 쓰는 순간에 대비하는 최대전력은 최대 138.2GW(기가와트)로 전망됐다. 이는 직전 11차 전기본(2038년 예측)보다 소비량이 각각 70TWh, 최대전력 약 9GW가 더 높은 수준이다.
수요 증가의 패턴도 완전히 달라졌다. 기존 산업과 경제 흐름을 반영한 전력 수요는 11차(655.5TWh)보다 약 9TWh 줄어든 반면, 반도체·AI 데이터센터·전기차 등에서 발생하는 새로운 전력 수요는 79TWh에서 173TWh로 두 배 이상으로 늘었다. 전 세계적인 AI 경쟁에 대응해 데이터센터 인프라를 확대하고, 국가 핵심 산업인 반도체 클러스터를 키우는 과정에서 필요한 전력이다.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것은 석유·가스 사용을 전기로 대체하는 ‘전기화’ 수요였다. 전기화란, 화석연료를 태워 에너지를 얻던 방식에서 전기를 사용하는 방식으로 전환하는 것을 의미한다. 신규 전력 수요 173TWh 중 69%에 가까운 119TWh가 전기화 수요였다. 전기화 수요는 2035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8년 대비 53~61% 감축하겠다는 ‘2035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를 달성하기 위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2035년까지 전국에 ‘히트펌프’ 350만대를 보급하려는 목표를 100% 이번 전기본에 반영했다면 최대 전력 전망치가 더 급등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히트펌프는 전기로 공기나 지중의 열을 끌어와 난방·온수를 공급하는 친환경 설비다. 건물용 히트펌프 1대 용량(약 15kW 추정)을 감안하면, 정부 목표 달성 때 약 50GW 이상의 전력 수요가 추가로 발생한다. 이번에 정부가 제시한 최대 전력 전망치(138.2GW)의 약 36%에 달한다. 에너지 업계 관계자는 “히트펌프 보급량을 지나치게 보수적으로 잡았다면 예상보다 전력 수급 문제가 커질 수 있다”고 했다.
전 세계적 과제 ‘에너지믹스’
폭발하는 수요를 어떤 발전원으로 감당할 것인가는 전 세계 공통의 숙제가 됐다. IEA에 따르면 재생에너지와 원전을 합친 전력 비중이 2030년엔 사상 처음으로 전체의 절반을 넘을 전망이다. 각 국가가 하나의 발전원을 선택하기보다는 재생에너지, 원전, 가스 등을 함께 엮는 추세라는 의미다.
예컨대 중국은 2030년이 목표였던 풍력·태양광 설비 1407GW를 2024년에 조기 달성했고, 발전 비중이 5% 수준인 원전은 38기를 추가로 짓고 있다. 미국은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이 1990년 12%에서 2025년 24%로 두 배로 커졌고, 원전은 2025년에도 18%를 차지했다. 반도체 공장, AI 데이터센터처럼 안정적인 공급이 중요해질수록 재생에너지의 간헐성과 원전의 경직성을 서로 보완하는 방식의 에너지믹스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국의 선택지는 많지 않다. ‘2035 NDC’ 목표 달성을 위해 석탄과 액화천연가스(LNG)를 크게 늘리기는 어렵다. 결국 재생에너지와 원전을 동시에 확충해 전력 공급 증가와 탄소 감축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함께 잡아야 한다는 분석이 많다.
IEA에 따르면 40여 국가가 원전을 에너지 전략에 다시 포함했다. 현재 건설 중인 세계 신규 원전 용량은 30년 만에 최고 수준이다. 세계 원전 총 설비 용량은 2035년까지 최소 35% 이상 증가할 것으로 IEA는 내다봤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 교수는 “에너지 정책의 가장 큰 과제는 탄소 중립과 에너지 안보, 성장을 모두 추구해야 한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재생에너지에만 무게 두는 정부
하지만 정부는 2월 말 중동 전쟁 이후 에너지 수급 불안이 커진 상황에서도 재생에너지 확대에 무게를 두는 분위기다. 이달 초 기후에너지환경부가 중동발 에너지 위기에 대응하겠다며 내놓은 ‘에너지 대전환’ 계획에는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설비 100GW를 조기 달성하겠다는 내용이 담겼지만, 원전 관련 내용은 빠졌다. 지난 1월 신규 원전 2기 건설을 예정대로 추진하겠다고 밝힌 이후 추가적인 원전 확대 방안은 제시되지 않은 상태다.
정용훈 카이스트 교수는 “AI와 반도체 산업이 확대될수록 24시간 끊김 없는 대규모 전력 수요도 함께 커질 수밖에 없다”며 “간헐성이라는 재생에너지의 물리적 한계를 보완할 안정적인 전원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영빈 기자
전준범 기자
https://www.chosun.com/economy/economy_general/2026/04/23/2XWZF6PAIJCPJEMV3J2AI7TA6I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