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투자 2년새 3배로
“탈원전 5년 동안은 사업이 망하는 줄 알았죠. 하지만 최근 회사에 원전 애프터서비스(A/S) 사업부도 새로 만들고, 본부장급 1명도 스카우트하니 아주 신바람 났죠.”
지난 1일 경남 김해의 원전 부품 가공 업체 ‘금광테크’ 공장에서 만난 박민영(52) 전무는 12t짜리 초대형 금속 노즐의 기름때를 닦아내며 이렇게 말했다. 이 부품은 다음 달 착공을 앞둔 신한울 3∙4호기에 투입된다. 일요일인데도 출근한 직원 6명은 무게 10t이 넘는 부품들을 크레인을 이용해 측정실로 옮기며 상태를 점검하고 있었다. 박 전무는 “이런 바쁜 분위기가 계속 이어져서 체코에 수출할 원전 부품까지 납품하면 탈원전의 상처를 회복할 것 같다”고 말했다.
신한울 3·4호기에 투입되는 노즐 부품 지난 1일 경남 김해에 있는 원전 부품 가공 업체 ‘금광테크’ 공장에서 직원들이 크레인으로 12t 무게의 노즐 부품을 측정실로 옮기고 있다. 이 부품은 다음 달 착공하는 신한울 3·4호기에 투입된다. 이 회사 박민영 전무는 “신한울 3·4호기를 시작으로 체코 등 해외 원전 사업에도 납품을 기대하고 있다” 말했다./김동환 기자
“20년 키운 기술, 물거품 될 뻔”
이날 찾은 금광테크는 2003년 부산에서 소재 가공 장비 1대를 놓고 열교환기 부품을 만드는 1인 기업으로 출발했다. 2005년 김민준(58) 대표가 두산중공업(현 두산에너빌리티)으로부터 “고온∙고압에 견디는 원전 부품을 만들어달라”는 부탁을 받아 원전 사업에 뛰어들었다. 2010년 UAE(아랍에미리트) 바라카 원전 사업에 참여하며 20억원을 투자해 새 장비를 사들였고, 10년간 100억원 넘는 매출을 냈다. 박 전무는 “바라카 원전 사업에 공격적으로 투자하면서 급성장했고, 신고리 3~6호기, 신한울 3∙4호기 부품을 만드는 경쟁력도 키울 수 있었다”며 “20년이나 갈고 닦은 기술력이 탈원전으로 자칫 물거품이 될 뻔했다”고 말했다.
탈원전의 위협은 거셌다. 2018년부터 5년간 금광테크의 신규 수주는 ‘제로’였고, 2017년 16억원이었던 원전 부문 매출은 1년 만에 60% 가까이 줄었다. 방산 사업까지 기웃거렸지만 단가가 일반 부품보다 4배나 비싼 원전 사업의 빈자리는 컸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신한울 3∙4호기 선(先)발주가 이어지자 원전 부문 매출이 14억원까지 회복했다.
그래픽=김현국
K원전 생태계가 활력을 되찾은 데엔 다음 달로 다가온 신한울 3∙4호기 착공과 24조원 규모 체코 원전 수주가 한몫했다. 3일 한국원자력산업협회 추산에 따르면, 지난해 원전 산업 전체 매출은 32조1000억원으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해외 원전 수주가 잇따르자 한수원의 수출 지원 사업을 신청하는 중소 업체도 지난 7월까지 60곳에 달해 작년 한 해(29곳)보다 2배 넘게 늘었다.
전체 원전 기업의 90%인 중소기업이 느끼는 ‘낙수 효과’도 뚜렷해지고 있다. 경남 창원에서 원전 노즐을 가공하는 원비두기술은 지난 정부 내내 일감이 없다가 올 4월부터 신한울 3∙4호기 부품 제작에 착수했다. 박봉규(64) 대표는 “6년간 멈춘 공장을 다시 돌리려고 직원들이 장비를 전부 분해해 청소하는 데만 한 달 넘게 걸렸다”고 말했다.
증기 발생기 부품을 생산하는 삼홍기계는 최근 공격적으로 인력을 충원하고 있다. 탈원전 기간 70명까지 줄었던 직원이 작년 120명으로 늘었고, 올해 10여 명을 추가 채용할 계획이다. 김승원(66) 사장은 “2021년엔 직원들에게 월급 15%를 반납해달라고 읍소했고, 7개월 동안 무보수로 일한다는 부장급 직원도 있을 만큼 어려웠다”며 “제조업 중 그나마 국산화율이 높은 원전 제조업이 다시 살아났으면 한다”고 했다.
”체코 수주 체감되려면 2030년 돼야”
물론 모든 협력 업체가 기대에 부푼 것은 아니다. 내년 초 체코 원전 본계약이 체결돼도 물량 발주까지는 4~5년이 더 필요하고, 신한울 3∙4호기도 2~3년 있어야 발주를 받는 업체도 있다.
부산에서 40년간 원전 부품을 생산한 경성정기는 탈원전 이후 밀린 대출금 80억원을 아직도 다 못 갚았다. 성남현 전무는 “은행에서도 대출 한도가 차서 돈을 더 못 빌린다고 하니 도산 직전”이라며 “체코 원전도 2030년이 넘어가야 물량이 들어올 텐데 6년을 어떻게 버티란 말이냐”고 했다.
김해=조재현 기자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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