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리 3호기 등 10기 줄줄이 중단
지난 정부의 ‘탈원전 대못’에 국내 원전들이 잇따라 가동을 멈추고 있다. 지난해 4월 고리 2호기에 이어 지난 28일엔 고리 3호기가 운영 허가 만료로 운전을 중단했다. ‘탈원전’을 내세웠던 지난 정부가 원전 10기에 대해 폐쇄를 추진하며, 1기당 수년씩 걸리는 연장 절차를 아예 중단한 탓이다.
‘탈원전 정책 폐기’를 내세운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며 체코 신규 원전 우선협상 대상자 선정, 신한울 3·4호기 공사 재개 등 나라 안팎에서 ‘탈(脫)탈원전’에 속도를 내고 있지만, 탈원전 5년 동안 상당수 원전 관련 인허가와 절차 등이 묶였던 상황에서 이를 한꺼번에 풀어내기에는 장애물이 많다는 지적이 나온다.
AI(인공지능)발 전력 수요 폭증 시대를 맞아 각국이 서둘러 신규 원전 건설에 나서는 가운데 우리는 오히려 멀쩡하게 돌리던 원전을 멈춰 세우고 있다는 비판이 커진다. 35년 동안 탈원전 정책을 이어온 이탈리아는 지난 7월 원전 재도입을 선언했고, 스위스도 지난달 신규 원전 허용 법안을 추진하며 ‘탈탈원전’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지난 정부 5년 내내 이어진 탈원전 정책은 아직도 원활한 허가 연장을 막고 있다. 고리 2호기와 고리 3호기가 나란히 가동을 중단한 가운데 2029년까지 가동 연한이 끝나 가동을 중단해야 하는 원전은 10기에 이른다. 원전이 잇따라 멈추면서 전력 공급 부족 우려는 커지고, 원전 대신 비싼 LNG(액화천연가스) 발전을 돌리며 생기는 손실은 수조 원에 달할 전망이다. 원전이 생산하는 전기가 하나둘 사라지면서 전력 수급이 위기를 맞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고리 2호기부터 해마다 1~2기 줄줄이 멈춰
29일 한국수력원자력에 따르면 전날 한수원은 부산 기장군에 있는 고리 3호기에서 원자로 가동을 중단하기 위한 절차에 들어갔다. 950㎿(메가와트)급인 고리 3호기는 1984년 9월 29일 40년 운영 허가를 받고 이듬해 9월 30일부터 가동을 시작, 지난 28일로 운영 허가가 만료됐다. 지난 40년 동안 부산 시민 전체가 13년 동안 사용할 2억840kWh(킬로와트시)에 이르는 전기를 생산해왔지만, 허가가 만료되면서 멈춘 것이다.
이 같은 이유로 원전이 가동을 중단하기는 지난해 4월 고리 2호기에 이어 1년 반 만이다. 고리 2·3호기 외에도 내년 8월과 12월의 고리 4호기와 한빛 1호기, 2026년 9월과 11월의 한빛 2호기와 월성 2호기 등 지난해부터 오는 2029년까지 가동 연한이 끝나는 원전은 모두 10기, 8450㎿에 이른다.
지난 정부는 이 원전 10기를 ‘노후 원전’이라 규정하고, 폐쇄를 추진하며 재가동을 막았다. 가동 연한 만료 2~5년 전 한수원이 안전성 평가보고서를 제출하며 절차를 밟아야 했지만, 탈원전 정부 아래서 관련 작업의 진행은 더뎠다. 대선이 끝난 2022년 4월, 허가 만료 1년을 앞두고서야 고리 2호기에 대한 연장 절차가 시작됐다.
고리 2호기는 연장 절차 시작 때부터 따지면 2년 반, 가동을 멈춘 때부터도 1년 반이 지났지만, 아직 허가가 떨어지지 않고 있다. 한 원전 업계 관계자는 “공사 재개를 두고 관심이 쏠렸던 신한울 3·4호기의 건설 허가가 지난 12일에야 나왔을 정도”라며 “애초 올 상반기에는 고리 2호기 연장이 결정되고 내년에는 다시 가동할 수 있다고 봤지만, 이마저도 불투명하다”고 했다. 한수원은 고리 2호기는 내년 6월, 고리 3·4호기는 2026년 6월부터 재가동에 들어간다는 목표를 갖고 있지만,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더 줄줄이 밀릴 수밖에 없다는 관측이 많다.
멀쩡한 원전이 차례로 멈춰 서면서 입는 손실은 고리 2호기가 멈춘 지난해부터 2027년까지만 5조원에 이를 전망이다. 발전 단가가 싼 원전을 돌리지 못하는 대신 값비싼 LNG 발전을 가동하면서 추가되는 비용을 한수원이 추산한 결과다. 중단 원전 1기당 1조원씩인 셈이다. 하지만 이 같은 손실 규모도 한수원의 목표대로 원전들을 재가동했을 때를 가정한 수치라는 점 등을 감안했을 때 실제 손실 규모는 더 커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기존 원전의 허가 연장이 늦어지면서 AI발 전력 수요 확대에도 제때 대응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가 커진다. 현 정부 임기 중 신한울 1·2호기, 새울 3·4호기(옛 신고리 5·6호기) 등 모두 신형 원전 4기(5600㎿)가 가동에 들어가지만, 이 기간 멈추는 6기(5150㎿) 중 한 곳도 연장 허가를 받지 못한다면 원전 설비용량 순(純) 증가 규모는 신형 원전 3분의 1 수준인 450㎿에 그친다.
문주현 단국대 교수는 “허가를 내주는 규제 기관인 원안위나 사업자인 한수원 모두 더 적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서야 한다”며 “서로 책임을 미루며 허가 연장이 제때 이뤄지지 않았을 때 전력 수급 등에 끼치는 악영향은 예상보다 클 것”이라고 말했다.
조재희 기자 조선일보
케이콘텐츠
댓글 없음:
댓글 쓰기